항목 ID | GC07900708 |
---|---|
한자 | 申在熹 |
영어공식명칭 | Sin Jaehui |
이칭/별칭 | 신재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성주현 |
출생 시기/일시 | 1850년 5월 5일 - 신재희 출생 |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895년 8월 20일 - 을미사변 발생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신재희 보납산 전투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896년 - 신재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신재희 애국장 서훈 |
활동지 | 보납산 전투지 - 경기도 가평군 |
묘소 | 신재희 묘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
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신재희(申在熹)[1850~189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이다. 이명(異名)은 신재가(申在嘉)이다.
[활동 사항]
신재희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895년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재직 중이던 낭천현감 관직을 버리고 조카사위 이충응(李忠應)과 의병을 모아 활동하였다. 춘천 이의신(李宜愼)의 의진과도 합세하며 싸우다가, 1895년 12월 22일 가평 보납산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체포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현장에서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개벽』에 의하면 “씨(氏)는 을미의병소(乙未義兵所) 운량관(運糧官)으로 관군(官軍)에게 전패(戰敗)하야 참수(斬首)을 당(當)할 종각(終刻)지 구불절제갈량장의부한병졸군중문천상갈충보국충사연옥(口不絶諸葛亮仗義扶漢病卒軍中文天詳竭忠輔國充死燕獄)하니라”라는 추모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소]
신재희의 묘는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있는 가평초등학교의 뒤 능선에 있다. 신재희의 묘 옆에는 당시 마을사람들이 무문비(無文碑)를 세웠다. 추모비문에는 ‘신공당세기호웅(申公當世氣豪雄) 삼십년내상상풍(三十年來尙想風) 노상위의인자외(路上威儀人自畏) 좌중담소관유융(座中談笑冠猶融) 천군난탈종지지(千軍難奪終持志) 일사여귀불허공(一死如歸不許功) 석아회승유고탁(昔我會承遺孤託) 지금기부괴비충(祗今己負愧非忠)’이라고 적혀있다.
[상훈과 추모]
신재희는 1991년 독립유공자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