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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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道奉 |
영어공식명칭 | I Dob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이도봉 3·1운동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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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이도봉 북면 만세시위 참여 |
거주|이주지 | 이도봉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
활동지 | 이도봉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도봉(李道奉)은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북면 만세시위 참여 당시 24세로 작성되어 있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도봉은 1919년 당시 잡화상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읍에 있는 가평군청으로 이동하였다. 이도봉은 김정호·최기홍·장귀남·김창현·권임상 등과 함께 가평군청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으며, 이날 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가평경찰서에서 1차 신문을 마친 후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가, 4월 26일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