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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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貴男 |
영어공식명칭 | Jang Gwinam |
이칭/별칭 | 장기남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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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장귀남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장귀남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
거주|이주지 | 장귀남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148 |
활동지 | 장귀남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장귀남(張貴男)은 가평군 군내면 대곡리[현 가평읍 대곡리] 출신으로 ‘장기남(張基男)’으로도 불리었다. 장귀남의 생몰년월일 및 자세한 가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89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콩 장수이며, 종교는 기독교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전국의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3월 15일 가평군 북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수백명의 군중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가평군청이 있는 가평읍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가평군 군내면(郡內面) 대곡리(垈谷里) 148에 거주하였던 장귀남은 가평 읍내에 있다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장귀남은 일본 경찰에 잡혀 가평경찰서에서 20여일간 취조를 받았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가 4월 26일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