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80 |
---|---|
한자 | 崔建爀 |
영어공식명칭 | Choe Geonhyeok |
이칭/별칭 | 최건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다혜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최건혁 출생 |
---|---|
수학 시기/일시 | 1918년 - 최건혁 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최건혁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최건혁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학교|수학지 | 제일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최건혁(崔建爀)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할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아버지는 최기풍(崔基豊)이다. 1901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최건화(崔建和)이다.
[활동 사항]
최건혁은 유년시절 할아버지 최학순에게 한학을 배우고, 서울로 상경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8년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학생들이 일본인이 가르치는 수업에 대한 거부로 동맹휴학을 결정하자 최건혁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시기 삼촌이였던 최기영(崔基榮)으로부터 가평에서 만세시위를 추친한다는 계획을 듣고 이에 동참하였다.
최건혁은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 100여 개를 제작하였으며, 3월 15일 가평군 북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북면 이곡리 주민들과 함께 북면사무소까지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북면에서 수 백명의 주민들이 노루목 고개를 넘어 읍내까지 행진하자 이에 동참하여 함께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