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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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소재지 | 돗치장집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막골 |적목리 조무락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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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화전민들이 살던 집.
[개설]
돗치장집은 화전민이 살던 집이다. 참나무를 잘라서 장작 쌓듯이 하여 만든 후 나무 사이의 틈을 진흙으로 발라서 만든다. ‘돗치장집’이라는 용어는 나무를 놓고 양쪽 귀퉁이를 도끼로 파서 쌓아올린다고 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즉, 통나무 네 개를 네모나게 놓은 후 네 귀퉁이를 파서 쌓아올리는 공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평군의 경우 한국전쟁 때 피해가 매우 심했던 곳이라 대부분의 돗치장집이 파괴되거나 전소되었으며, 그나마 오래된 집들도 대부분은 전쟁 이후에 지어진 집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평군 북면 제령리 막골에는 한국전쟁 이전에 지은 돗치장집이 여전히 남아 있다.
[위치]
가평군 북면 제령리 막골이나 북면 적목리 조무락골에 옛 화전민이 살던 돗치장집이 남아 있다.
[변천]
가평 지역에 돗치장집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는 산림법이 엄하여 화전을 하기 힘들었고, 가평 지역에서는 해방 이후 화전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당시부터 돗치장집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가평군은 한국전쟁의 피해가 매우 심했던 지역으로 대부분의 주택들이 전쟁 때 파괴되거나 전소되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오늘날 화전민이 살던 돗치장집이 일부 남아 있어 가평 지역의 주생활 역사를 살피는 데 참고할 수 있다.
[형태]
돗치장집은 남향의 일자형(一字形) 주택이다. 왼쪽에 부엌, 오른쪽에 방이 나란히 있고, 방 앞에 마루가 있다. 또 본채 앞에는 뒷간과 헛간이 위치해 있다.
[현황]
가평군 북면 제령리 막골 박창서 가옥은 인근 골짜기에서 넓적한 돌을 주워 1950년대에 방고래를 만들었다. 지붕은 나무를 깔아서 고물을 만든 후 그 위에 흙을 바르고 다시 고물을 눌렀다. 지붕에는 억새를 베어다가 새끼로 엮어 덮었는데 1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했다. 1970년대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지역에서 ‘고콜’이라고 하는 관솔불을 켜고 살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방 한쪽 구석에 장작을 켜고 여기에 관솔 가지를 꺾어다 불을 밝혔고, 밤에는 그 앞에서 짚새기[짚신]를 삼았다. 한편, 고콜을 만들 때는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반드시 돌을 쌓아 굴뚝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의의와 평가]
돗치장집은 과거 가평 지역 화전민의 주생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진 집으로, 지역의 생활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는 주택이기에 잘 보존하여야 한다. 특히 돗치장집 등 산촌의 주택은 지역의 문화재이자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