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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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長里 - 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인재 |
건립 시기/일시 | 1976년 - 복장리 조규팔 가옥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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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복장리 조규팔 가옥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
성격 | 고가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 있는 조규팔의 가옥.
[변천]
조규팔[가명, 1939년 생, 남]의 집은 스스로 나무를 잘라 지은 집이다. 비록 1976년에 지은 살림집이지만, 비교적 전승되어 오는 방식으로 직접 지었다. 이 집은 ㄱ자형 구조를 지니고있다. 집의 상량에는 ‘1976년 2월 16일 술시 입주 상량’이라고 적혀 있다. 그 이후 조규팔은 집을 다시 지으려 했지만 큰 아들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포기하였다. 본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목수로 일했다. 조씨 역시 목수를 했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양옥으로 개조되어 외양간의 흔적은 찾기가 쉽지 않다. 조규팔의 경우를 살펴보면 창고에는 살림 도구들이 가득 차 있다. 싸리나무로 만든 광주리와 쌀 미곡기가 창고에 자리 잡고 있다. 간단한 농기구는 창고 옆의 벽면에 걸려 있거나 창고의 지붕에 올려져 있다. 예전에 쓰던 부엌에는 가마솥과 자귀 망치와 같은 조규팔 씨가 귀중하게 여기는 연장들이 보관되어 있다. 안채와 창고 사이의 바로 뒤에 예전에 꼴을 끓이거나 했던 아궁이와 가마솥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
복장리 조규팔 가옥은 안방과 마루 그리고 욕실과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규팔 씨의 가족 구성을 살펴보면, 조규팔은 부인과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큰딸은 지금 청평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며, 큰아들은 수원에서 자동차 회사에 다니고 있다. 막내딸은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막내아들은 박사 학위를 받고 다국적 기업에 입사를 했다. 자식들이 학교를 다니기 이전에는 모두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키웠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에는 현재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방이 하나 더 있어서 아이들의 공부방을 대신하였다.
현재에 안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은 원래는 부모님이 쓰시던 방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부부가 현재의 안방으로 왔다. 지금의 건넌방이 원래는 안방이었다. 지금의 안방은 불을 때는 방이다. 건넌방은 기름을 때는 보일러 방이다. 부부가 둘이 사는 평상시에는 안방 이외에는 쓰지 않는다. 안방의 형태는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크기는 가로가 3자, 세로가 1자 반 정도이다. 기름 값도 만만치 않고, 안방에 군불을 때고 누워 있으면 그것이 바로 황토방이다. 아직 집의 벽면도 처음에 사용한 진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방에는 전화와 TV가 마루를 항해 열려 있는 곳에 놓여 있다. 예전에 부엌으로 쓰이던 곳에 다락이 있다. 뒤편으로 가로 세로 30~40㎝의 창이 있어서 밖에 나가지 않고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이불은 열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펴 놓고 있다. 창문과 마주보는 벽면에 요사이 잘 입는 옷을 걸어 보관한다.
건넌방은 안방과 마찬가지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크기는 가로가 5자, 세로가 1자 반이다. 사실 건넌방이 더 크고 원래의 안방 자리였지만 현재의 안방이 더욱 편하고 좋다. 건넌방에는 현대식 장롱과 화장대가 놓여 있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사다 준 옥 매트와 그 위에 아들들이 오면 덮을 수 있는 이불이 올려져 있다. 그 옆으로 옷을 걸어두는 옷걸이가 하나 서 있다. 철이 지난 옷은 옷걸이에 걸려 있다.
화장실은 집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마당을 지나 집에 들어오는 입구에 있다. 화장실은 콘크리트로 다시 지어지긴 하였지만 좌식 변기가 없다. 화장실 옆에는 창고로 쓰는 작은 건물이 하나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