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55 |
---|---|
한자 | 上村 - 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인재 |
현 소재지 | 상촌 신영희 가옥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
성격 | 고가 |
[정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에 있는 신영희의 가옥.
[개설]
신영희[가명, 1922년 생, 여]는 시집을 온 후 잣둔리 큰집에서 같이 살다가 20살 먹어 제령리 막골로 분가하였다. 막골에서는 남의 집 곁방살이를 8년간 했는데, 큰집에서 나올 때 빈몸으로 나와서 이불도 없이 맨바닥에 거적을 깔고 살았다. 곁방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남의 산에 있는 나무를 조금씩 몰래 가져다, 다듬고 쌓아두었다가 처음으로 집을 지었다.
[형태]
신영희가 현재 살고 있는 상촌집은 잣둔리 큰괴미에 있던 집을 뜯어다 김갑수네서 지은 집인데,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 막골에서 다니기가 너무 힘이 들어 이 집을 사서 내려왔다. 원래는 아랫방·윗방·건넌방·부엌만 있던 것을 이사 온지 삼년 정도 지나 새로 마루도 놓고 행랑채도 지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 자리는 원래 흙바닥이었으며, 행랑채를 짓기 전 마구간은 거의 쓰러져가는 상태였고 문도 싸리깽이로 대강 얽어놓은 것이라 행랑채로 마루와 광, 나무대문을 세웠다.
‘소마구’에서는 ‘쇠’ 달아서 소를 키웠고, 쇠죽은 건넌방 부엌 아궁이에 큰솥을 걸어서 만들었다. 여물광은 소 먹일 때 여물을 썰어 담아놓으려고 만든 것이다. 부엌에는 집을 지을때부터 붙박이로 달아 둔 찬장이 있고, 집의 뒤꼍에는 굴뚝과 대추나무가 있다. 현재의 담은 이웃집과 협의하여 5, 6년 전 세웠으며, 뒷간은 원래부터 지금처럼 대문 밖에 있었는데 역시 이사온 후 새로 지은 것이다. 본채 지붕에 달린 함석창은 한 십년 전에 달아놓은 것인데, 연탄을 때는 집은 이미 다 삭아서 새로 했지만 나무를 때기 때문에 아직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