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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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浦口民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범성 |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의 크고 작은 나루 근처에서 고기잡이나 나룻배, 여객선 등을 운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개설]
가평 지역에는 청평댐으로 수로가 막히기 이전 북한강 강변 곳곳에 크고 작은 나루들이 있었다. 댐 건설로 많은 땅이 물에 잠기고 수위가 올라가면서 기존 나루 중에는 소멸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기능을 유지하다가 여객선과 버스가 등장하면서 점차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더러는 여객선 선착장으로 남아있고, 대부분 여객선에 밀렸지만 아직도 나룻배가 다니는 곳도 있다.
[변천]
1937년 양수교의 건설, 1939년 중앙선 철도의 개통, 1940년 청량리에서 양평까지의 철도 개통, 1943년 청평댐의 완공 등으로 가평 지역의 나루 기능은 물론 지역 경제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평 지역 북한강 나루는 약 12개가 있었는데 교통의 발달로 농민들은 쌀, 콩, 팥 등의 곡류를 내다 팔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하는 정도여서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또한 1970년대 동력 여객선의 도입으로 나룻배는 대부분 도태되었고 나루터도 단순한 여객선 선착장으로 남게 되었다. 여객선 승객 또한 도로가 확장되면서 점차 줄기 시작해 현재 가평 내의 여객선은 유람선 1척 뿐이다. 나루 근처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들도 아직 남아있는데 강화수협 산하 가평군 어촌계가 결성되어 있고 약 56~57명의 어부들이 가평 내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어부들이 쏘가리, 붕어, 모래무지, 장어 등을 잡아 중간 상인에게 넘겼다. 1970년대 청평호 유원지가 형성되자 고기류의 수요가 늘어 호황을 누렸으나 양식 어류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타격을 입고 쇠퇴하게 되었다. 현재는 가평군 어촌계에서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남이섬 입구에 가평군 어촌계 공판장을 통해 어부들이 잡은 고기들을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