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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37
한자 高貞植
영어공식명칭 Go Jeong-sik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고종 35)연표보기 - 고정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고정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고정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고정식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본관 제주(濟州)

[정의]

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고정식(高貞植)[1898~1923]은 1920년 전주군 고산면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강도죄로 복역 중에 옥사했다.

[가계]

고정식의 본관은 제주(濟州)로 완주군 고산면(高山面) 읍내리(邑內里) 출신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고경태(高景泰), 증조할아버지는 고세규(高世逵), 할아버지는 고진민(高鎭敏), 아버지는 고갑준(高甲浚)이다.

[활동 사항]

고정식은 1920년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고산면(高山面)에서 김진성(金振聲)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김진성은 유동열(柳東悅), 우덕순(禹德淳)과 함께 1918년 하얼빈[哈爾浜]에서 독립군 800여 명을 모집하고 러시아의 극동군(極東軍) 책임자(責任者) 호리왓트 대장(大將)과 협정을 맺고 동청철도(東淸鐵道) 수비를 해주며 독립군 양성에 전력하였다. 김진성이 1919년 12월 25일에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해 신영삼(申榮三), 이규찬(李奎燦)과 하얼빈에 있던 유동열을 찾아 갔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京城)의 일본헌병사령부로 압송되었는데 양기탁(梁起鐸)의 주선으로 3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출옥한 김진성은 1920년 2월에 이순명(李淳明), 김교우(金敎雨), 김한규(金漢奎)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으고 있었는데, 1920년 5월경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북일면(北一面) 석방리(石方里)에 거주하는 김한규(金漢奎)의 집에서 고정식을 만났다. 김진성을 만난 고정식은 1920년 6월경 다시 김한규의 집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고정식은 고산의 부호이자 친일파인 고갑준의 서자이었는데, 김진성 등은 고정식을 설득하여 고갑준에게서 독립운동 자금을 탈취하기로 하였다. 김진성 등은 8월 14일 전북 군산(群山)에 이르러 일본인 상점에서 완구용 육혈포 두 자루와 회중전등 한 개를 사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8월 18일 밤 12시경 김교우를 삼례역(參禮驛)에 세워 두고, 김진성·이순명·김한규는 고산면 읍내리(邑內里) 고갑준의 집에 도착하였고, 문밖에서 대기하던 고정식은 이들에게 고갑준이 거처하는 방을 알려 주었고, 김진성 등은 고갑준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여 9,600여 원을 받아냈다. 당시 이 사건은 『我子가 背後에 立하야[자식으로서 아비를 협박하고 돈을 강탈하여]』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1921년 2월 24일자에 기재되었다. 이후에 김진성, 고정식 등은 미국의원단(美國議員團)이 내한하였을 때 살포할 전단 1,000여 장을 휴대하고 상경하고, 양기탁을 통하여 상해임시정부로 송금하려다가 체포되었다. 고정식은 1920년 11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도죄’로 3년 형을 받고 복역 중 26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하였다.

[상훈과 추모]

고정식은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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