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176
한자 臥龍里
영어공식명칭 Wary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삼기면 와룡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삼기면 와룡리에서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559㎢
가구수 107세대[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209명[남 119/여 90]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와룡리는 본래 고산군 북하면 지역으로 지형이 용이 누운 형국이라 해서 ‘와룡’이라 명명되었다.

[형성 및 변천]

와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양리, 후동리, 와상리, 와중리, 임전리, 인봉리, 나복리와 와하리, 종리의 각 일부 및 동하면의 어덕리 일부, 그리고 운서상면의 창곡리, 신풍리의 각 일부를 합하고 ‘와룡리’라 해서 전주군 삼기면에 편입시켰다가 1935년에 완주군 화산면으로 소속되었다.

[자연환경]

와룡리는 동쪽으로 완주군 화산면 운제리종리가 접하고, 서쪽으로는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완주군 비봉면 이전리가, 남쪽으로는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그리고 북쪽으로는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가 맞닿아 있다. 마을 중심부를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다. 개울은 가양마을 쪽에서 용학천과 합류해서 고산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한편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서 화산면사무소로 이어지는 군도 제643호선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간다. 나복마을에 나복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현황]

와룡리의 총면적은 4,559㎢이며, 인구수는 2018년 6월 30일 기준 총 107세대, 209명[남 119명, 여 90명]이다.

현재 와룡리는 나복, 임전, 상와, 가양마을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전북전래지명총람』에는 자연마을을 나복동(羅伏洞), 임전(林田), 새터, 어덕말[於德], 갱이[佳陽], 후동(後洞)[뒷골], 와룡(臥龍)[上臥, 臥中, 下臥]이라 했다. 나복(羅伏)마을은 북쪽으로는 창곡마을과 동남쪽으로는 임전마을이 접하고 있다. 나복마을은 『호구총수』에 북면 나복동리(羅伏洞里)로 나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임전(林田)마을과 함께 어덕말, 새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전마을 위쪽은 나복이고, 아랫마을은 원종리이다. 임전마을 또한 『호구총수』에 북면 임전리(林田里)로 나오는 유서 깊은 곳으로 전부터 밤나무숲이 무성했다고 한다. 어덕말 또한 북하면 어덕리(於德里)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연원이 만만치 않다. 다만 새터는 어느 기록에도 보이지 않으나 『화산면지』에 경주김씨가 1925년경에 처음 살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마을의 형성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1934년에 처음 사람이 정착해 생긴 번적골과 1972년에 한우 사육을 위해 정착하면서 생긴 천석골 등의 마을이 있다. 상와(上臥)마을은 현재 상와와 와중의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상와마을은 북하면 와룡(臥龍)으로 나타난다. 현재 상와마을은 와상을 뜻하며, 달리 ‘상화’라고도 불린다. 또 와중마을은 와룡마을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해서 ‘중뜸’이라고도 불린다. 가양(佳陽)마을은 현재 가양, 후동, 하와의 세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하와마을은 와룡에서 갈라져 나온 와하마을로 기록상 마을 연원이 가장 오래되었다. 후동마을도 북하면 후동으로 가양마을 역시 북하면 가양리로 나온다. 가양마을을 달리는 ‘갱이’라고 부르고, 후동마을은 ‘뒷골’이라 하며, 하와마을은 ‘아랫동네’라 칭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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