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177
한자 宗里
영어공식명칭 J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주군 삼기면 종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5년 - 전주군 삼기면 종리에서 완주군 화산면 종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6,204㎢
가구수 225세대[2018년 6월 30일 기준]
인구[남/여] 429명[남 228/여 201]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종리는 본래 고산군 북하면 지역으로 마루들에 있으므로 ‘마루들’ 또는 한자어로 ‘종리’라고 불렸다.

[형성 및 변천]

종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동, 번대리, 농상리, 농하리, 궁명리와 동하면의 어덕리 일부를 합하고 ‘종리’라 해서 전주군 삼기면에 편입시켰다가 1935년에 완주군 화산면으로 소속되었다.

원종(元宗)마을은 종리의 원 마을로 ‘마루들’이라고도 불리는데 북면 종리(宗里)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곳이다. 원종리 아래에 있는 시향골은 운제현의 향교가 있는 곳이다. 시향골은 달리 ‘가향’, ‘향교골’, ‘시암골’, ‘승곡(昇谷)’ 등으로도 불린다. 본래 종리와 시향골은 별개의 마을이다. 궁평(弓坪)마을은 원종마을 남쪽에 있는데, 북하면 궁평리(弓坪里)이다. 마을 뒤에 고총이 있는데, 이를 ‘쇠동뫼’라 하는 바 검은 흙으로 보아 쇠를 다루던 곳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번대(番垈)마을은 달리 ‘번디’라고도 불리는데, 북면 번대리(番垈里)로 나온다. 마을 뒤에는 성가마골[城釜洞, 釜洞]이란 마을이 있고, 서북쪽에는 구두골[구두곡, 갈재]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갈재’라는 명칭으로 보아 『호구총수』의 운서면 갈동리[加叱洞里]와 연관성을 짚어볼 수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용수(龍首)마을은 국도 제17호선이 여수-청주 간 도로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며 도로 윗마을을 웃용수마을, 아래를 아래용수마을이라고 한다. 웃용수마을은 ‘농상리’, ‘상용수리’라고도 하며, 아래용수마을은 ‘농하리’, ‘하용수’라 불린다. 웃용수는 북하면 농상리(農上里)로, 아래용수는 북하면 농하리(農下里)에서 연원한다. 용동(龍洞)마을은 윗마을을 상룡, 아래마을을 하룡이라 부르나 본래는 북면 용동리(龍洞里)로 나오는 유서 깊은 곳이다. 마안(馬鞍)마을은 모든 기록에 마을 지명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리 연원은 길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종리는 원종, 궁평, 번대, 용수, 상용, 하용, 마안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면에서 국도 제17호선이 지나는 유일한 곳이며, 고산면에서 화산면으로 들어서는 첫 땅이 종리이다. 경천저수지의 물을 대는 들이 넓어 화산면에서 첫째로 꼽는 동네이다. 종리는 3개 면[화산면, 경천면, 고산면]의 접경으로 화산삼거리는 예부터 주막이 있어 모이고 흩어지는 사람들이 많아 정보 소통이 빠른 곳이었다.

[현황]

종리의 인구수는 총면적은 6,204㎢이며, 2018년 6월 30일 기준 총 225세대, 429명[남 228명, 여 201명]이다. 종리는 동쪽으로는 완주군 경천면 경천리, 남쪽으로는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서쪽으로는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와 북쪽으로 완주군 화산면 운제리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종리(宗里)[마루들], 구두골[갈재], 궁뜰[弓坪], 구압들, 시향골[가향, 시암골, 昇谷, 佳鄕, 侍郞], 용수말[農所, 웃용수말, 上龍水, 農上里, 아래용수말, 下龍水, 農下], 질마재[馬鞍], 사농골[가능골, 細洞], 번디[番垈], 성가마골[城釜洞, 釜洞]의 10개나 있었다. 또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고산현에 철장(鐵場)에 대해서 “현의 북쪽 번북동(番北洞)에 있는데, 연철(煉鐵), 정철(正鐵) 7백 4근 12냥쭝을 군기감(軍器監)에 바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고산면 읍내리에서 북쪽에 해당하는 번대마을이 ‘번북동’이라 추정되므로 마을의 연원이 매우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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