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03
한자 馬峙里淨水寺極樂殿
영어공식명칭 Geungnakjeon Hall of Jeongsusa Temple in Machi-ri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정수사길 1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2년 -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8년 -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 개축
현 소재지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정수사길 18 지도보기
원소재지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137-1 정수사
성격 사찰
양식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정수사
관리자 정수사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에 있는 정수사의 중심 불전.

[위치]

정수사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만덕산 아래 평탄판 평지 위에 자리하며 사찰 앞으로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정수사의 입구를 들어서 정면에 있다.

[변천]

완주군 상관면정수사는 889년(진성여왕 2)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고려시대에도 법등이 이어졌다고 하나 문헌상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중기인 1581년(선조 14)에 진묵대사가 중건했으나, 중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절이 모두 불에 타버렸는데 이후의 구체적인 중건을 찾아볼 수 없다. ‘가람고(伽藍考)’와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절은 완주군에서 서남쪽으로 30리 지점에 있다’는 기록 등 정수사 관련 내용이 있고, 1652년(효종 3)에 봉안된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잘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친 후 다시 중건해서 법등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인 1799년(정조 23)에 편찬한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처음에는 ‘중암(中庵)’이라고 했다가 후일 주변 산수가 청정해서 ‘정수사(淨水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23년 초운선사가 요사 2동을 지어 새롭게 법등을 이었고, 1971년 이동수 주지가 부임해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본격적인 중창불사를 시작했다. 1987년 무렵 벽돌 요사를 짓고 1992년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을 중수했으며 1996년 초가 요사를 허물고 현재의 관음전을 새로 지었고, 2002년에는 삼성각을 세웠다. 2007년 극락전을 새로 중수하고 기존의 극락전은 지장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형태]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은 2007년 신축된 정수사의 중심 불전으로 정수사 경내 중심에 있다.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은 석축 위에 조성되었는데 석축 정면에 극락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조성되었다. 계단은 10단의 디딤판과 무지개 모양의 소맷돌을 갖추었다. 기단은 석축 위에 가공된 석재를 한 단으로 조성했고 기단 위에 잘 가공된 원형 초석을 사용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었다. 입면의 구성을 보면 정면 어칸 상부에는 검은 바탕에 ‘극락전’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어칸을 비롯해 양쪽의 협칸에는 두 짝의 네 짝 분합교살문이 설치되었다. 공포는 다포를 올렸으며 처마는 모두 겹처마를 구성한 팔작지붕[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추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지붕]으로 높고 건물이 웅장하게 보이도록 했다.

[현황]

정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정수사’라는 사찰명은 흔한 편으로 청정한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2007년 신축된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 내에는 2015년 3월 2일 보물 제1853호로 지정된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어 극락전의 내부 출입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촬영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치리 정수사 극락전은 보물 제1853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을 봉안하고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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