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05
한자 元基里大院寺大雄殿
영어공식명칭 Daeungjeon Hall of Daewonsa Temple in Wongi-ri
이칭/별칭 대웅보전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3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0년연표보기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창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066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374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415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06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33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6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2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8년 -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복원
현 소재지 대원사 대웅전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243 대원사지도보기
원소재지 대원사 대웅전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997
성격 불전(佛殿)
양식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대원사
관리자 대원사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있는 대원사의 불전.

[개설]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의 삼존불상이 모셔진 대원사의 본전으로 대웅보전이라고도 한다.

[위치]

모악산 동쪽 중턱 해발 420m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이 사찰의 중심불전인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사역의 중앙부에서 뒤쪽으로 물러나 산기슭 가까이에 있다.

[변천]

원기리 대원사는 670년(문무왕 10)에 열반종의 개산조 보덕의 제자인 대원, 심정 등의 고승이 창건했다. 1066년(문종 20)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1090~1141]이 중창했는데, 이때를 창건으로 보기도 한다. 1374년(공민왕 23)에는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중창했으며, 1415년(태종 15)에도 중창 또는 중수가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정유재란 시 대부분 건물이 소실되었고 1606년(선조 39)에 진묵(震默) 일옥(一玉)[1526~1633]이 다시 대규모로 중창, 1733년(영조 9)에 동명(東明) 천조(千照)의 중창이 있었다. 그리고 1886년(고종 23)에 건봉사(乾鳳寺) 승려 금곡(錦谷)과 함수산(咸水山) 거사가 함께 대웅전을 중건했다. 현재의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1902년(광무 6)에 세웠다고 하며 1948년에 대웅전 복원 수리 지붕의 기와에서 ‘영락 을미년(永樂 乙未年)’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었다.

[형태]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두 단의 석축으로 조성된 대지 위에 위치한다. 첫째 단은 자연석 기단 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고 둘째 단은 거친돌 장대석 쌓기 방식으로 4단을 쌓아 조성되었다. 두 단의 석축 중앙에는 대웅전으로 오르는 10개의 계단이 있다. 두 단의 석축 위에는 대웅전의 어칸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석등이 하나씩 세워져 있다.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의 기단은 거친돌 장대석 쌓기 방식으로 2단을 쌓았다. 중앙의 어칸 앞에는 1단의 디딤돌이 설치되었고 동측면에도 출입문 앞에 한 단의 디딤돌을 놓았다. 기둥은 원형기둥으로 배흘림을 주지 않은 직립주에 가깝다. 기둥의 상부를 비롯한 창방, 공포, 보, 도리, 내부의 가구 부재에는 모두 단청이 칠해져 화려한 느낌을 준다.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 정면 어칸의 상부에는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있고 각 칸에는 두 짝의 교살분합문이 설치되었고 우측면에는 신도들의 출입을 위한 교살문을 한 짝 달았다. 좌측면과 후면은 벽체로 마감했다.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의 평면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정면은 어칸이 2.99m, 협칸은 2.44m, 2.46m이고. 측면은 어칸이 2.08m이고 양 협칸은 1.70m, 1.172m로 구성되었다. 내부는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2개의 고주를 사용했으며 그 앞쪽으로 2개의 기둥을 감주했다. 조선 후기 불전인 옥천사 대웅전, 금산사 대장전, 기림사 약사전 등과 같이 불단을 후면 벽체에 바로 붙여 설치해 예불공간의 면적을 최대한 확보했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있는 삼세불이 모셔져 있으나 닫집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대웅전 건물 외벽의 좌우측면 및 후면의 창방과 중인방 사이 벽면에는 신장상들이 그려져 있다. 바닥은 장마루를 깔아 마감했으며, 내부가구는 1고주 5량가 연등천장으로 구성했다. 공포는 이익공 형식[살미 부재가 새 날개처럼 생긴 공포 형식을 익공이라 하는데 익공이 2개인 양식]으로 다른 이익공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도리 방향의 수직으로 결구된 익공 부재가 45° 각도로 좌우에 하나씩 추가되어 3쌍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3쌍으로 이루어진 이익공의 상부, 즉 보머리에는 용과 봉황이 초각된 장식을 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추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지붕] 형태로서 일반적인 사찰의 기와와는 달리 청기와를 올렸고 추녀에는 풍경을 달았다.

[현황]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내부의 여러 부재가 부식되고 수리 과정에서 부재를 덧붙여 사용한 것들이 확인되는 등 전체적으로 건물이 노후화해서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각이지만 대웅전이 가진 사찰 내 전각의 위계와 중요성 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함을 표현하기 위해 공포를 특별하게 처리했다. 익공집이 가지고 있는 소박하고 단순한 외관을 보다 장엄하게 보이도록 귀공포를 다른 부분까지 연용 하면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이러한 익공은 다른 사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원기리 대원사 대웅전의 가치를 높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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