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리 화암사 부도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11
한자 佳川里花巖寺浮屠塔
영어공식명칭 Stupa of Hwaamsa Temple in Gacheon-ri
이칭/별칭 가천리 화암사 승탑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가천리 1078]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가천리 화암사 부도탑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가천리 1078]지도보기
성격 부도
양식 석종형 승탑
관련 인물 덕선당
재질
크기(높이) 극락전 뒤편 부도: 지대석 장축 140㎝, 단축 100㎝, 높이 20㎝, 연화대좌 높이 30㎝, 직경 70㎝, 탑신 높이 110㎝, 둘레 226㎝, 상륜 50㎝|극락전 좌측 부도: 전체 높이 70㎝|화암사 진입로 부도1: 장축 85㎝, 단축 60㎝, 높이 20㎝, 탑신 높이 85㎝, 최대경 47㎝, 전체 높이 105㎝|화암사 진입로 부도2: 연화대좌 높이 28㎝, 직경 70㎝, 탑신 높이 97㎝, 전체 높이 125㎝
소유자 화암사
관리자 화암사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화암사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승탑.

[개설]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주를 이룬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과 같이 평면이 사각형인 것이나, 범종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石鐘形) 승탑이 등장해 팔각원당형 승탑과 함께 변화 발전한다.

[위치]

가천리 화암사 부도는 모두 4기가 남아 있다. 4기가 한곳에 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자리한다. 1기는 극락전 뒤편 대나무 숲속에 있으며, 또 1기는 극락전 좌측 뒤편의 담장 아래에 자리하고, 나머지 2기는 화암사 진입로 좌측에 위치한다. 화암사 진입로 주변에 자리한 2기의 부도는 화암사 입구 주차장에서 화암사 진입로를 따라 400여m 걷다 보면 나무다리를 만나는데,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의 평탄한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극락전 뒤편 대나무 숲속에 자리한 부도는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도로 이번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형태]

화암사 극락전 뒤편 대나무 숲속에 위치한 부도는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부도로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형태는 석종형이다. 부도가 자리한 곳은 주변 지면보다 약간 높은 곳으로 지대석 주변 사방에는 넓고 판판한 냇돌로 경계를 돌리고 있다. 부도는 지대석과 연화대좌 그리고 종형 탑신으로 이루어졌다. 지대석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주로 비석의 받침돌에 사용된 귀부형태이다. 거북의 머리는 잔뜩 움츠러들게 표현했고 발톱은 4개를 선명하게 조각했으며, 꼬리는 길게 표현되었다. 장방형의 지대석은 연화대좌가 놓일 귀부의 중앙부를 원형으로 높게 뽑아 올린 후 상면을 평평하게 처리했다. 지대석의 규모는 장축이 140㎝, 단축이 100㎝, 높이 20㎝이다. 연화대좌는 높이 30㎝, 직경 70㎝인데 하단에 깊은 홈을 1줄 돌렸으며, 상면은 탑신을 끼울 수 있도록 일정 깊이로 파내었다. 대좌 전면에는 9잎의 연꽃이 앙련으로 조식되었는데 형태가 유려하고 볼륨감이 뛰어나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탑신은 세장한 형태의 석종형으로 최대경이 하복부에 있으며, 탑신 하단은 연화대좌에 끼워진 상태이다. 상단에는 복발과 보륜, 보주로 구성된 상륜을 조각했다. 탑신과 상륜이 1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부도의 규모는 탑신이 높이 110㎝, 둘레 226㎝이고, 상륜이 50㎝이다.

화암사 극락전 좌측 담장 아래에 자리한 부도는 화암사 주변에서 옮겨온 것으로 본래의 자리는 알 수 없다. 부도는 연화대좌 위에 구형(球形)의 탑신을 놓았으며, 그 위에 1매로 된 옥개석이 놓여 부도는 모두 3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전체 규모는 높이 70㎝이다. 화암사 진입로 변에 자리한 부도 2기는 모두 조선시대에 조성한 석종형이다. 바깥쪽[진입로 쪽]에 자리한 부도를 부도1, 안쪽[산 쪽]에 자리한 부도를 부도2로 명명해서 기술하면, 부도1은 대좌와 탑신만 남아 있는데 대좌는 자연석을 방형으로 다듬어 사용했으며 규모는 장축이 85㎝, 단축이 60㎝, 높이 20㎝이다. 탑신은 최대경이 하복부에 있고 하단이 대좌에 끼워져 있어 매우 안정감 있게 처리되었으며, 탑신 상단부에 1조의 돌대를 돌렸다. 탑신석 상면에는 상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결실되었다. 탑신 정면에는 일정 범위를 장방형으로 구획한 후 그 안에 ‘덕선당(德善堂)’이라는 명문을 선각했다. 탑신의 규모는 높이 85㎝, 최대경 47㎝로 부도 전체 높이는 105㎝이다. 부도2는 부도1과 이웃해 있는데 도굴 과정에서 파괴된 것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대좌는 연화대좌로 대좌 상부에 연꽃이 복련으로 조식 되었다. 탑신 하단은 대좌에 끼워 넣기 위해 끝을 각출했는데 현재 대좌 밖으로 빠져 있어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탑신 상면에 표현한 상륜은 대부분 결실되고 현재는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흔적만 남아 있다. 연화대좌의 규모는 높이 28㎝, 직경 70㎝이고 탑신의 높이는 97㎝로 부도의 전체 높이는 125㎝이다.

[금석문]

화암사 부도 4기 중 진입로 주변에 자리한 부도2에 ‘덕선당(德善堂)’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부도2의 주인공이 덕선당인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화암사 부도 중 극락전 뒤편 대나무 숲속에 자리한 부도는 6.25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이 여러 곳에 남아 있으며, 이때의 충격으로 탑신이 군데군데 깨져 있다. 이 부도는 화암사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으며, 설과 추석 때 다례를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화암사 진입로 주변에 자리한 부도2기는 도난의 위험이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의의와 평가]

가천리 화암사 부도는 지금까지 진입로 주변에 위치한 2기만이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새로이 고려시대 부도가 확인되어 화암사의 창건 연대를 고찰하는데 좋은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부도의 기단부가 갖는 매우 특이한 형태는 학술적 가치가 높아 주목되는 승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입로 주변에 자리한 부도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명문을 확인한 것도 이번 조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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