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정리 비비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443
한자 後亭里飛飛亭
영어공식명칭 Bibijeong Pavilion in Hujeong-ri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남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73년연표보기 - 후정리 비비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52년 - 후정리 비비정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후정리 비비정 복원
현 소재지 비비정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정면 3칸
측면 칸수 측면 2칸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위치]

후정리 비비정완주군 삼례읍 후정리의 ‘한내[한천(寒川)]’라 부르는 강인 삼례천의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전면에는 삼례천이 유유히 흐르고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후면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변천]

우암 송시열이 지은 「비비정기」에서는 ‘장비’나 ‘악비’에서 비비정이 유래했다고 한다.「완산지」에는 ‘飛飛亭, 在北 三十萬曆癸酉武人崔永吉建, 爲別, 中間撤去, 英祖壬申年, 觀察使 徐公命九重建, 以爲官亭’라 기록되어 있어 후정리 비비정의 위치와 유래를 알 수 있다. 즉, 후정리 비비정은 1573년(선조 6)에 무인 최영길(崔永吉)이 초창했는데 그 후 철거되었다가 1752년(영조 28)에 관찰사 서명구(徐命九)가 중건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과 더불어 정자가 없어졌는데 최영길의 9대손 최광용이 을유년에 감영에 품계를 했지만 중건을 보지 못했다가 1998년에 후정리 비비정이 복원되었다.

[형태]

후정리 비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 건축으로 평면은 누마루로 되어 있으며 주위로 계자난간[난간동자를 닭의 발 모양으로 바깥쪽으로 구부정하게 하고, 돌난대를 밖으로 내밀어 걸친 난간]을 설치했다. 후정리 비비정의 구조는 가공된 화강석 사다리꼴 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결구했다. 공포는 기둥 위에 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양식]이고 주간에는 화반을 끼웠다. 가구는 5량 집이고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우진각지붕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추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지붕]이다.

[현황]

완산 팔경 중의 하나인 후정리 비비정은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 해서 비비낙안(飛飛落雁)으로 유명하다. 한내[삼례천]는 물이 유난히 차갑다 해 붙은 이름으로, 깊은 산속에서 물이 흘러 형성된 소양천고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이자 전주천과 삼천천이 합류해 만경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내는 군산과 부안에서 오는 소금과 젓갈을 실은 배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던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한 마지막 길목이었다. 그리고 한내에는 범선이 오르내려서 고산천 하류에 돛단배가 꿈처럼 미끄러져 가는 풍경을 연상시킨다는 의미에서 동포귀범(東浦歸帆)이라 해 이 역시 완산 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이곳에서 선비들은 후정리 비비정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와 운문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한다. 후정리 비비정 기슭에 있는 한내의 강변에는 지금은 갈대와 풀로 무성해져 모래밭이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모래밭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전국 각지에서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 -완주군(완주군·전북대학교 박물관, 2006)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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