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부지가 잡은 명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218
한자 何姓不知-明堂
영어공식명칭 Propitious Site for a Grave that Haseongbuji found (A Story of Propitious Site for a Grav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1년 8월 14일 -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 황인덕이 이석준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12월 29일 -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완주의 구전설화』에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으로 수록
채록지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하성부지|신부|막내 아들
모티프 유형 명당|발복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은 황인덕이 2001년 8월 10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 이석준[남, 82세]에게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225~226쪽에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으로 수록했다.

[내용]

동래정씨의 한 양반이 장가를 갔는데 첫날밤 저녁에 신부가 느닷없이 아들을 낳았다. 양반은 오히려 신부가 아비를 모르는 아이를 낳은 일을 감춰주며, 미역국과 쌀밥을 먹이고, 낳은 아이도 잘 키웠다. 그런데 어떤 성인지 몰라서 ‘하성부지(何姓不知)’라고 했다. 하성부지는 산으로 가서 지리 공부를 해 지관이 되었다. 하성부지는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묘소를 명당으로 잡아서 은공을 갚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명당자리에 돌덩어리가 있음을 보고 괭이로 그 돌을 찍자 거기에서 학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 버려 명당의 기운이 소멸되었다. 큰아들의 하소연에 하성부지(何姓不知)가 묏자리를 잡아주었고 그 덕분에 양반 아들 삼 형제는 모두 정승 판서가 되었다.

[모티프 분석]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明堂)’과 명당을 통한 ‘발복(發福)’이다. 명당을 잘 잡아 후손들이 발복하는 이야기는 ‘명당’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의 기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명당 이야기는 현세적인 한국인의 세계관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이 분포되고 있다. 다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전승되는 「하성부지가 잡은 명당」 이야기는 ‘명당-발복’의 기본 구조에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살려주는 에피소드들이 삽입되고 있다. 어떤 성씨인지도 모르는 ‘하성부지’를 잘 키워준 선행의 대가로 명당을 잡아준 점이나 잡아준 명당이 막내아들 때문에 그 기운이 소멸했다는 등 내용이 첨가되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