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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229
한자 朴處綸
영어음역 Bak Cheoryun
이칭/별칭 거경(巨卿),잠조당(潛照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부천시
성별
생년 1445년연표보기
몰년 1502년연표보기
본관 고령
대표관직 전라관찰사

[정의]

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거경(巨卿), 호는 잠조당(潛照堂). 고령 박씨의 시조인 박언성(朴彦成)의 13세손이며, 경기도 평택군 안중면 수촌리에 집성촌을 형성했던 감사공파(監司公派)의 중시조 박광우(朴光佑)의 3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태종 대에 사간원정언과 사헌부지평을 지낸 박미생(朴美生)이며, 아버지는 1445년(세종 27) 성균관전적을 지낸 박사란(朴思欄)이다. 어머니는 군수(郡守) 유한(柳閑)의 딸 부평유씨(富平柳氏)이고, 부인은 최치빈(崔致濱)의 딸 수원최씨(水原崔氏)이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활동사항]

1470년(성종 1) 문과 중 을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가 정9품으로 사초(史草)를 작성하는 검열(檢閱)이 되고, 경연을 담당하는 전경(典經)과 홍문관의 정자(正字)를 겸하였다. 1471년(성종 2)에는 완성된 『단종실록』과 『세조실록』 편찬에 춘추관의 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1472년(성종 3) 승정원 주서(注書)가 되었을 때 전라도 익산에서 강도가 창궐하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정7품인 규장각 검교를 거쳐, 1476년(성종 7) 정월에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고, 병조와 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1480년(성종 11) 12월 사헌부 지평이 되었으며, 홍문관 전한(典翰)을 지냈다. 1489년 남양부사(南陽府使)로 갔다가 내직으로 돌아와 봉상시의 부정(副正)을 거쳐 사간원 사간을 지냈다. 당시 남양부의 백성들이 박처륜의 치적이 현저함에도 승진이 너무 늦음을 그 곳 감사에게 탄원하여 정3품 품계인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 뒤 중추원의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1494년(성종 25) 관압사(管押使)로 명나라 연경에 갔을 때, 명나라의 관리들이 박처륜이 가지고 온 사물(私物)을 보고 청렴함에 탄복하여 조정의 찬사를 받고 돌아왔으며 대사간,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으며 호당록(湖堂錄)과 청백리록(淸白吏錄)에 이름을 올렸다. 그 후 지제교(知製敎)와 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외직인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으나 신병이 재발하여 내직으로 돌아와 첨지중추부사로 있으며 병을 치료하다가 4년 만인 1502년(연산군 8) 음력 7월 13일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 7-3번지에 있다. 잠조당약수터 북쪽 약 30m 지점에 아버지 박사란과 함께 있다. 묘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망주석·문인석 등의 석물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옥개형이며 박처륜과 부인 수원 최씨의 합장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은 도학에 통달한 대제학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 1502년(연산군 8)에 지었다. 비석이 유실되었는데 최근에 복원하였다. 잠조당약수터의 본래 명칭은 장수천약수터였으나 잠조당 박처륜의 청렴한 선비 정신을 후대에 기리기 위해 명칭을 바꿨으며, 부천시에서 약수터에 표지판을 세워 박처륜의 뜻을 새길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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