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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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矢匠 |
영어의미역 | Artisan making Horn Bow and Arrow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규리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서 활과 활촉을 만드는 기술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개설]
활은 예부터 전쟁과 수렵·운동 도구로 쓰여 왔는데, 특히 우리나라는 맥궁(貊弓)의 주산지였다. 활 제작은 장궁(長弓)인 흑각궁(黑角弓), 단궁(短弓)인 백각궁(白角弓)으로 나뉘는데, 궁시 작업은 모든 공정이 각기 시간차에 의해 꼼꼼하게 이루어진다. 재료를 다루는 기법을 제대로 터득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공조(工曹)의 공장부(工匠部)에서 궁시장을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국궁(國弓)이라고도 불리는 궁시장은 우리나라 전통 활과 활촉 제작의 명인들로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부천 지역에서는 옛 고구려의 활 제작 전통을 그대로 살려온 맥궁이 지금도 만들어지는 등 여느 지역보다 궁시장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변천]
부천의 대표적인 궁시장은 김장환[1909~1984]이었다. 옛 부천 지역인 부평군 서면 신대리에서 아버지인 경주김씨 김동천(金東天)과 어머니인 김해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장환이 활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활 제작 기술이 능했던 할아버지 김원제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 김원제와 아버지 김동천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김장환은 16세에 각궁 제작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활을 제작하였다.
부천 활이 최전성기를 이룬 것은 김장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김장환은 활을 잘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활을 잘 쏘기로도 유명하였다. 이로 인해 1957년부터는 주한 미해군 사령관 푸리스 소장 등 외국인 100여 명에게 궁술을 강의했으며, 궁술잡지 『아취아리』를 통해 미국 각지 47개소에 통신으로 강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한궁도협회 사범 및 이사로 왕성하게 활동하여 1964년에는 경기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활발하게 활동 중 1984년 7월 75세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1985년 4월 29일 김장환을 기리는 기념비가 후진들에 의해 제작되어 그의 활 인생의 무대이기도 한 성무정에 세워졌다.
1934년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김장환의 2남 3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김기원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활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궁도대회에서 아버지 김장환과 함께 나란히 1위와 2위에 입선하기도 하였다. 아버지와 같이 뛰어난 활 제작 솜씨와 궁도 솜씨를 보유하여 국가에서 인정한 궁시 분야의 유일한 전수 강사이며, 기능 준보유자이기도 하였으나 198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심곡본1동 662-1번지[경인로216번길 37]에 위치한 김장환궁시공예연구소에는 김장환과 김기원 부자의 활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기원의 뒤를 이어 부천 지역 궁시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이가 바로 김박영이다. 김박영은 활의 고장인 경상북도 예천 왕신동에서 태어나 부천 김홍경의 슬하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활과 인연을 맺었다. 35세 때 경기궁의 명인인 김장환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김장환의 활 제작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1980년대 이후 그의 솜씨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준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부천 지역에서 김박영 이외에 궁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는 김기원의 아들인 김동진이다. 김동진은 아버지 김기원에게서 활 만드는 법을 배워 150여 년에 걸쳐 5대째 가업을 이은 궁시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