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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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壽益 |
영어음역 | Seong Suik |
이칭/별칭 | 덕구(德久),칠봉(七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중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덕구(德久), 호는 칠봉(七峯). 아버지는 장흥고령(長興庫令) 성예원(成禮元)이다.
[활동사항]
성수익은 1552년(명종 7) 생원이 되고, 155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承文院權知)에 임명되었다. 1568년(선조 1) 개성경력(開城經歷)이 되어 정몽주(鄭夢周)의 옛 집터에 사당을 세우고 서경덕(徐敬德)과 함께 제사지냈다. 1571년(선조 4) 부평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이어서 사옹원정, 군자감정, 상의원정, 회양부사 등을 지냈다. 1586년(선조 19) 동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예부(禮部)를 통해 종계변무[宗系辨誣: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했던 사건]를 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였고,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제수되었다. 1595년 개성유수가 되어 백성을 안정시켰으며, 향교를 중건하여 학풍을 진작시켰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왕비를 수안으로 호종하다 과로로 병을 얻었고, 1598년 해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590년(선조 23)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창산군(昌山君)에 책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