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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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溪洞-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도훈 |
[정의]
김동원 영화 감독이 1986년 10월 6일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까지 서울특별시 상계동과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일대의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찍은 다큐멘타리 단편영화.
[개설]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각 언론들은 역사적인 일인양 떠들어댔고 그 영향으로 국민들도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외곽에는 그로 인한 소외된 이웃이 있었다. 서울올림픽에 오는 외국손님들에게 가난한 서울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관점에서 진행된 달동네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상계동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200여 곳의 달동네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몇 십 년씩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주민들은 최소한의 삶의 공간을 보장하라고 외쳤지만 정부는 철거 깡패와 포크레인, 그리고 전투경찰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그들을 구속하고 집들을 철거해 버렸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 했지만, 언론마저 침묵해버렸다. 상계동 올림픽은 서울올림픽에 빗대어 독재의 시대에 행해졌던 무자비한 철거에 항거하는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어 당시의 통속적인 영화들하고는 차별성을 가졌다.
[구성]
상계동올림픽은 1986년 10월 6일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까지 상계동 철거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단편영화로 총 상영시간 27분이다.
[내용]
상계동올핌픽 영화에서 첫 부분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은 “9월에 1분도 안 되는 성화 봉송을 위해, 1월부터 40세대 200여 명이 떨어야 한다”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추어 성화가 지나가는 길 근처는 ‘환경 미화’를 해야 했고, ‘미관상’ 좋지 않았던 상계동 주민들의 터전은 그렇게 철거되었다.
김동원 감독은 알고 지내던 신부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철거에 따른 재판 자료로 쓸 수 있게 가재도구나 파손된 집기 같은 걸 증거 화면으로 촬영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상계동에서 촬영을 시작하면서 아기 업은 아줌마가 철거 용역들과 대치하고 몸을 날려 포크레인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런 곳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김동원 감독은 상계동 주민들과 생활하면서 ‘세상의 절반’을 알게 되었다. 김동원 감독은 상계동에서 3년 넘게 거주하면서 상계동 주민들 삶의 곳곳을 영상으로 담았다.
상계동에서 쫓겨난 철거민들 80가구가 처음 정착한 곳은 명동성당이었다. 명동성당에서 살다가 40가구가 부천시 고강동에 850평의 땅을 사서 이주 했다. 그런데 부천에서도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올림픽 성화가 지나간다는 이유로 가건물조차 철거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가건물조차 마음대로 못 짓게 하는 비극적인 장면이 연속해서 이어졌다.
김동원 감독에게 상계동은 영화에 대한 판타지를 깨줌과 동시에 내면의 복잡한 잡념을 없애준 곳이었다. 이렇게 해서 1983년부터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서 1988년에 나온 작품이 ‘상계동 올림픽’이었다.
[의의와 평가]
상계동올림픽은 김동원 감독이 빈민운동 단체의 회원이 되고, 산동네를 계속 찾아다니면서 지역운동을 영화와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