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A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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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지 |
“옛날에는 허가 없이 쌀장사 못했어요. 어쨌든 배는 안 굶으니까 부자였지요.”
자유시장에서 곡물, 고추 장사를 하기 위해 50년 동안 조치원, 신탄진, 공주, 천안장터를 누비고 다녔다는 김홍갑 할아버지(77세)와 이춘자 할머니(70세) 부부. 옛날에는 시골에서 곡물을 직접 운송했다고 한다. 깊은구지에 워낙 유명한 소사 복숭아밭이 천지라서 잠깐 과일 장사도 하셨다고.
“깊은구지 전체가 복숭아밭이었어요. 공동묘지가 한 가운데 있었는데요. 거기 빼고 다 복숭아 밭이었다니까요. 길도 없고 다리도 없었어. 땅이 얼마나 질었는지 신랑을 팔아서라도 장화는 신어야 한다고 했어요. 워낙 발이 빠지니까.”(김홍갑, 부천 자유시장 상인, 77세) (이춘자, 부천 자유시장 상인, 70세)
어려운 시절부터 지금까지 쌀집 운영을 하실 정도면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셨을 것 같다고 했더니 두 내외분이 고생 많이 했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일 하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고 언제나 두 분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셔서 숨돌릴 틈도 없었다고 하신다.
“옛날에 쌀 배달은 다 자전거로 했어요. 좀 많이 실고 가는 것은 배달도 좀 해주고. 한때는 우리가 도매를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조그만 쌀장수는 여기서 사다가 장사하고 그랬다고. 옛날에는 쌀가게가 흔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시에서 허가 없이는 장사를 하지 못했거든요.”(김홍갑, 부천 자유시장 상인, 77세) (이춘자, 부천 자유시장 상인, 70세)
하지만 자유시장에 처음 왔을 때 운이 좋게 허가를 받으실 수 있었다는 할아버지. 다행히 장사도 잘되는 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배는 안 굶었으니 부자였다며 편안한 웃음을 지으셨다. 사거리약국[경인약국] 땡땡이 골목에서 15년을 장사했고 시장 바깥쪽에서 20년을 장사하셨으니 웬만한 상인들은 할아버지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고 한다.
“땡땡이 골목에서 쌀장사할 때는 여름철만 되면 정말 물 천지였다고. 그 때 쌀 한 가마니에 80㎏이었거든. 그게 한 절반은 물에 잠겼었지. 밀가루도 한 300포 있었는데 한 50포는 그냥 버려야 했어. 그래도 하도 살기 어려우니까 젖은 쌀은 사람들이 떡 해 먹는다고 반값에 두 세 말씩 들고 갔어. 밑지는 장사였지만 하늘이 하는 일을 어떡하겠어.”(김홍갑, 부천 자유시장 상인, 77세) (이춘자, 부천 자유시장 상인, 70세)
이런저런 이유로 쌀가게가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때문에 할머니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콩나물 장사, 고구마 장사를 하면서 남모를 눈물도 많이 쏟았다고 한다.
“우리 둘이 고생한 거는 말도 못해요. 우리 여기 올 때 동네가 뭐가 있었어. 전부 논이고 가운데는 도랑이고 역전에는 장사하러 들어가지도 못하게 철망 쳐 놓고 그랬어요.”(이춘자, 부천 자유시장 상인, 70세)
비록 옛날처럼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지만 편한 손을 놀릴 수 없다며 여전히 쌀가게 한 자리를 지키고 계신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은 희망에 기댄 삶의 위대함을 소박하면서도 힘차게 증언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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