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A0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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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지 |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함시로 자전거, 기차, 삼발이 차 안타본 것이 없죠.”
1965년부터 자유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셨다는 배석홍 할아버지(73세). 1957년도에 군 제대하고 부천에 정착하신 할아버지는 자유시장의 전경을 줄줄 읊으셨다.
“자유시장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하나 있었어요. 자유시장 뒤편으로는 과수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포도밭과 복숭아밭이었어요. 그 위로 올라가면 유한양행이 있었거든요. 그 주변에는 소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과 집 몇 채가 있었구요. 유한양행이 없어진 다음에는 펄벅재단이 접수해서 6·25 전쟁 때 생긴 고아들을 돌봤어요. 아직 펄벅재단 기념관[펄벅기념관]이 남아 있어요.”(배석홍, 부천 자유시장 상인, 73세)
할아버지는 1954년도에 시장을 덮친 물난리를 회상하시면서 몸서리를 쳤다.
“지금이야 정비가 잘 됐지만 50년대야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이 거리는 모두 경인국도였고 철도국 밑으로는 모두 논밭이었어요. 그런데 한 해는 대홍수가 나서 철도 밑에까지 물이 꽉 찼어요. 사람들이 미처 물을 피하지 못해 여러 명 다쳤죠. 깊은구지에서 내려오는 물하고 하우고개에서 내려오는 물하고 합쳐가지구 내려가는 물구멍이 작으니까 그렇게 난리를 친 거예요.”(배석홍, 부천 자유시장 상인, 73세)
사십여 년이 넘게 건어물 장사 한우물만 판 배석홍 할아버지는 좋은 물건을 떼기 위해서 4시 반에 기차를 타고 영등포 시장을 오갔다. 그러다 돈이 좀 모이자 삼발이 차를 구매하여 몰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고급 자가용 부럽지 않은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훤한 인물에 멋진 삼발이 차 까지 끄셨으니 동네 처녀들에게 인기 만점이었을 듯하다.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함시로 자전거, 기차, 삼발이 차 안타본 것이 없죠. 그래도 사람들은 버스를 주로 탔어요. 인천에서 영등포 가는 버스가 있었거든요. 한 30분 정도 걸렸으니까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어요.”(배석홍, 부천 자유시장 상인, 73세)
건어물 장사를 하셨지만 여러모로 쓰임이 좋은 삼발이 차를 그냥 굴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때는 역곡 농사시험장에서 물건을 나르는 일도 맡아 하셨다고 한다.
근처에 뽕나무밭이 많았는데 까맣게 매달린 열매가 아직도 눈에 삼삼하시다고 하셨다. 이렇듯 자유시장과 농사시험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차곡차곡 재산을 불린 배석홍 할아버지는 이제 시장 안에 자기 점포를 꾸린 어엿한 사장님이 되셨다. 좌판에 먼지가 쌓일세라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정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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