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B02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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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택희 |
사돈을 맺고 마을을 이룬 이웃사촌
작동에는 오래전부터 여흥민씨, 청주한씨, 해주정씨가 세거해 왔다. 비록 지금 구 작동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지만 이들은 작동의 토박이로서 마을 운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작동의 여흥민씨들은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혼인으로 여흥민씨 여천위파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여흥민씨가 작동에 정착하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일화가 전해진다.
원래 작동에는 이씨와 변씨가 살고 있었고 민씨들은 다만 여천위 민자방의 산소를 작동에 썼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여천위 산소 묘막에 불이 나는 바람에 서울에 살던 그 후손들이 선조의 묘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서 작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동의 민씨 집안에는 서울에 살던 동네 이름을 딴 공덕리댁, 용산댁, 돌머리댁 등의 택호가 있다고 한다.
작동의 청주한씨는 시조 한란의 14세손인 한명진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이양공파에 속한다. 청주한씨가 부천에 들어오게 된 것은 한명진의 아들 한언이 계수동에 정착하면서부터이고 그의 넷째 아들 한홍연은 계수동에서 작동 인근인 춘의동으로 분가했다. 그런데 한홍연과 그 후손들의 묘가 작동에 있으며 족보에는 한홍연의 부인이 여흥민씨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작동의 한씨들은 한홍연이 작동에 거주하던 여흥민씨와 결혼하면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계수동에 살던 한홍연이 여흥민씨와 결혼하면서 작동 혹은 춘의동으로 분가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흥민씨의 사위로 들어온 청주한씨는 처가인 민씨에게서 땅을 하사받았으며 그래서 지금도 한씨 선산이 작동 능골의 민씨 선산과 맞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청주한씨의 산소가 점차 민씨 쪽 선산까지 다가오자 두 집안 간에 선산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 사이의 골짜기에 불을 놓아 화죽골이 생겨났다고 한다. 마을노인들은 짐작하건데 대략 200~300년 전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두 집안 간의 관계, 나아가서는 조선시기 친족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두 집안이 혼인관계를 맺었던 15세기 후반만 해도 조선사회는 아직 부계 혈족집단을 중심으로 한 친족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이며 따라서 사위인 한씨 집안이 처가인 민씨 집안의 세거지로 이주하고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계혈족집단 중심의 친족공동체가 강화되면서 두 집안간의 관계도 재정립을 요구받았고 이러한 사정이 양가의 선산을 징계지우는 화죽골 전설로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작동의 청주한씨는 여흥민씨의 사위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조선 후기 이래 독자적인 친족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동과 춘의동 일대에 퍼져 있는 한홍연의 후손들은 중부장, 한홍연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1979년에는 ‘청주한씨 중부장 홍연파 종친회’를 결성하였다.
홍연파 종친회는 이전에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던 문중을 근대적인 조직체계와 규약을 갖는 종친회로 전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결성 당시 회원은 30명이었으며 이 중에서 춘의동 거주자가 10명, 작동 거주자가 3명이었다.
청주한씨 홍연파는 작동에 선산을 두고 있으면서도 춘의동에 더 많이 살고 있으며 결성 당시에는 종친회 사무실도 춘의동 거주자의 집으로 삼았다. 따라서 작동의 청주한씨들은 작동 거주자에만 한정되지 않고 춘의동까지 아우르는 범위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작동과 춘의동 일대의 청주한씨도 벌써 500년 정도의 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흥민씨 못지않게 숫자도 많고 촌수도 멀어졌을 것이다.
국세조사와 농지개혁자료에서 확인되는 청주한씨들의 관계를 분석해 보면 194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작동에 청주한씨 홍연파가 7~10가구 정도였다는 것과 이들 사이의 촌수가 30여 촌까지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씨들은 20여 년 전부터 많이 줄어서 지금은 구 작동의 1가구를 비롯하여 신 작동과 이주단지를 합쳐도 5가구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청주한씨는 작동과 춘의동 일대에 퍼져 있고 촌수도 멀어졌지만 홍연파 종친회 등록을 통해서 제도적인 안정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음력 10월이면 작동에 있는 선산에 모여 시제를 지내며 이 때 종친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청주한씨는 비록 작동 내에 많이 살고 있지는 않아도 인근의 친척들끼리 내적 결속을 다져가고 있다.
작동의 해주정씨는 시조 정숙의 10세 손인 정광전[1566~1638]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우후공파가 대부분이고 주부공파가 한 가구 있다. 작동에 처음 들어온 해주정씨는 우후공 광전의 손자인 정욱[1621~1679]이다. 정욱은 원래 지금의 인천 서곶 검안동이 고향인데 작동에 살던 청주한씨와 결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두 집안의 족보를 대조해 보면 해주정씨 우후공파 12세손인 정욱이 청주한씨 이양공파 20세손인 한여망의 사위였음이 확인된다. 정욱의 장남인 정후주의 생년이 1645년이므로 해주정씨가 작동에 들어온 것은 여흥민씨나 청주한씨보다 약 150여 년 후인 17세기 중반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작동에 사는 세 대성들은 민씨, 한씨, 정씨 순으로 혼인관계에 의해 이곳에 들어온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민씨네가 왕조 사위로 작동에 들어왔고, 한씨네가 민씨네 사위로 들어오고, 정씨네는 한씨네 사위로 들어온 것이니, 세 성씨가 멀리 보면 다 사돈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