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B03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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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택희 |
“남초등학교는 북초등학교랑 비교가 되었는데 북초등학교는 순수 한국인학교였고 남초등학교는 일본인 중심의 학교였지.”
과거 부천에는 소수의 초등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초등학교와 북초등학교는 서로가 가진 특성 때문에 유명한 학교였다. 그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때문이었는데 북초등학교는 순수 한국인들로만 이루어진 학교였던 반면에, 남초등학교는 선생님과 학생 모두 거의 일본인이었고, 한국인들은 소수 포함되어 있는 일본인 중심의 학교였다. 작동 여흥민씨가의 종손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란 민경흥 할아버지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 다닐 수 있던 남초등학교를 다니셨다.
“내가 다니던 어렸을 적 학교 남초등학교는 일본인이 중심이 된 학교였는데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까지 6분의 일본인 선생님이 계셨지. 그리고 한국인 선생님도 몇 분 계신 걸로 기억이 나. 그리고 학생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는데 보통 학년 당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는데 우리 학년에는 그 중에서 7명이 한국인 학생이었고 나머지는 다 일본인이었지. 여학생이 한명이었고 6명이 남학생이었어.”(민경흥, 여천위 민자방 16세손, 1931년생)
남초등학교는 아무래도 학교가 가진 특성 때문에 한국인 학생들이 다니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특히, 언어는 학교 내 일상생활은 물론 학업과도 연결되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이 남초등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남초등학교는 기본적으로 일본인 학교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지. 그래서 일본어를 못하면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수업을 받는데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민경흥, 여천위 민자방 16세손, 1931년생)
또한, 남초등학교는 일본인 중심 학교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경우 특정 학생들에 한해서만 입학이 가능했다. 일본인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집안의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남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남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내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다녔던 학생이었지. 우리 동네에서 북초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몇 명 있었는데 남초등학교는 나 혼자서 다녔지. 다른 학년에는 사촌들이 다니긴 했는데 같은 학년에서는 내가 유일했어. 아무래도 남초등학교는 일본인 학교이다 보니까 한국인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지. 일본과 관련되어 있는 특별한 집안의 아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물론 공부도 잘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민경흥, 여천위 민자방 16세손, 1931년생)
남초등학교는 부천의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일본인이 중심이 되는 일본인 학교였다. 물론 특별한 지위를 가진 소수의 한국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러한 특권을 가진 한국인조차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차별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여야만 했던 사실이 시대의 비극을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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