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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사대부들이 선호한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C010202
지역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상원

청주한씨의 집성촌

양지마을에서는 원미산으로 알려진 ‘멀미’의 제일봉우리인 장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대봉에서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불끈 솟아올라 마을 이름이 양지마을이 되었다. 양지마을은 청주한씨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고 가운데 당아래는 대흥기계나 대아정밀 등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 위치해 있었다.

너머 당아래는 부천종합운동장 근처로 흔히 고비골로 불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 마을은 춘지봉이 한겨울에도 북풍한설을 막아주고 양지가 발라 언제나 봄같이 은화하고 따뜻하다. 한때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낸 흔적이 발견되어 양짓말이란 지명이 붙었다.

부천은 예로부터 씨족을 중심으로 하여 양반마을이 형성되었다. 예전부터 수도에서 백 리 안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왕실의 친인척과 양반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아왔기 때문이다. 현재 춘의동 양지마을은 청평군 한언의 후손 청주한씨[이양공파]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형성된 마을이다.

‘청주한씨 대동보’에 따르면 마한 말기에 우평, 우성, 우량이라는 3형제가 있었는데 마한이 망하고 삼국시대가 되자 맏이 우평은 고구려에서 묵원선우씨가 되고 둘째 우성은 백제에서 덕양(행주)기씨가 되고 우량은 신라에서 상당(청주)한씨를 이어받았다고 되어 있다.

부천 지역의 청주한씨는 시조의 12세손인 문열공 한상질의 손자인 이양공 한명진의 아들 한언이 계수도에 정착하면서부터 부천과 인연을 맺은 이래, 한언의 넷째 아들인 한홍연춘의동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이후부터 그 후손들이 춘의동에 지속적으로 거주하였다고 하니 당아래 양지마을은 한씨들의 집성촌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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