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D01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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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웅규 |
연분홍 복사꽃이 피어나는 무릉도원
부천은 현재 심곡본동인 깊은구지와 송내동 지역을 중심으로 소사 복숭아밭이 중점적으로 형성되어 왔으며, 이곳에서 수확량의 대부분을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외지 사람들도 부천의 소사복숭아를 맛보기 위해 실제 산지인 송내동을 중심으로 복숭아 과수원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부천 전역이 모두 다 복숭아밭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물론 전 지역에 걸쳐 조금씩은 있었지만 가장 중심적으로 많았던 데가 여기 송내동이랑 심곡본동[깊은구지]이었어요. 여우고개 넘어가는 쪽에도 분포되어 있었구요. 뭐, 경인국도를 지나가면서 보면 복숭아밭이니까 착각을 할 수는 있었겠네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비록 깊은구지와 송내동 두 지역만이 부천 복숭아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마을 한가득 번지는 복숭아 향은 부천의 전역을 감싸 안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이로 인해 복숭아 마을로서 부천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송내동에서 퍼지기 시작하는 달콤한 복숭아 향은 조금씩 이동하면서 부천 전역을 온통 연분홍색으로 물들였던 것이다.
특히 솔안말은 포도, 딸기로도 유명해 서울 사람들의 휴식처 겸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있었다. 현재 솔안말에서 2대째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승근[60세, 소사구 송내 1동] 씨는 복숭아 재배가 한창이던 시절, 속이 붉고 과육이 단단한 조생종 복숭아가 생산물의 주를 이뤘다고 회상한다. 이승근 씨의 아버지 대부터 부천 복숭아의 명성은 멀리 만주까지도 알려졌다고 하는데, 1960~70년대에는 복숭아밭 대부분이 포도밭과 함께 현재의 경인국도와 경인전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어,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나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사복숭아도 도시 개발의 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송내동은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복숭아 4대 생산지로 소개될 만큼 복숭아농사로 유명했던 고장으로, 봄이면 아름답게 피는 복숭아꽃이 분홍빛 물결을 이루고, 7~8월이면 복숭아 향이 가득한 정 넘치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에 밀려 복숭아밭이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었다.
이처럼 인구가 늘어나고 주택이나 공장이 다투어 들어서자 과수원 임야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980년대 이후 복숭아밭은 차츰 주택가나 공장지대로 변해갔고 수확 가능한 복숭아나무는 원미구 역곡 1동과 소사구 송내 1동에 각각 3,000평 8,000평 정도만이 남아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솔안말의 농경지도 서쪽의 약대동, 중동, 상동에 절대 농지로 묶여 있는 논처럼 주택가로 바짝 에워싸였거나 북쪽의 경인국도 너머의 대장동, 오정동, 원종동, 고강동 같은 변두리에 얼마쯤 흩어져 있을 뿐이다. 지금도 한 해에 삼백 톤 정도의 복숭아를 수확하기는 하지만, 한때 유명했던 서울 자하문 밖의 자두처럼 소사복숭아도 아예 자취를 감출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변화 때문인지 한때 부천시청에서는 시의 꽃을 복숭아꽃에서 장미꽃으로 바꾸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오히려 복숭아나무를 심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 최근에는 부천시 곳곳에서 복숭아나무가 심겨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부천의 활성화된 복숭아 재배와 관련되는 역사를 찾아가면 대략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당시 토지조사사업 등의 명목으로 총독부를 등에 업고 우리 국토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그들의 구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였는데, 그때 부천에서는 복숭아나무가 재배된 것이다. 1908년경부터 시작된 부천의 복숭아 재배는 1925년경부터는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부천시 중심부를 기점으로 복숭아밭이 광범위하게 둘러 싸여 있어 복숭아 도시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지. 맛이 굉장히 뛰어나서 인기가 좋았다고. 복숭아를 팔다가 없으면 다른 지역 복숭아를 공수해 와서 부천 복숭아라고 속여 팔기도 했어. 물건 들어오자마자 바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금세 동이 났지.”(민경남, 부천교육박물관 관장, 1941년생)
특히 부천에서 생산된 복숭아는 자유시장 건너 깡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팔려나갔다. 또 깡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복숭아 통조림 공장도 들어섰는데 이 때 처음으로 과물협동조합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의 생계 수단이 되었고, 부천의 이름을 전국에 떨치게도 하였던 부천 명물 소사 복숭아. 1980년대 도시화 이후 쇠락의 길을 걸은 것도 사실이지만 복숭아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경험들은 그들의 삶의 유산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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