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D01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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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웅규 |
시인의 정서를 뒤흔드는 마을
서울하고 가까운 역곡역 언저리나 인천하고 가까운 송내역 언저리는 고속도로 너머의 북쪽 동네들과 마찬가지로 부천시의 중심지와는 약간 동떨어져 있으며 아직까지 시골냄새가 꽤 짙은 곳이다.
송내동 남쪽은 국도를 따라 부천시의 중심지에 닿아 있으나 북쪽 지역으로 갈수록 농촌의 모습을 띤다. 그런가하면 고속도로 너머의 동네들은 부천시에서 가장 뒤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이 동네들은 오정동에 자리 잡고 있던 미군 부대가 1970년대 중반에 철수한 뒤로 한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송내동의 경관은 1960~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송내동에는 이 지역의 경관과 마을 사람들의 경험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지명이 많았다. 솔안말, 구지리, 산골, 서촌말, 양안리, 방아다리논, 밭뜬논, 수렁배미논, 소나무백이논, 밤곶이논, 개건너논, 뱀골논, 배뜰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솔안말은 경인국도와 경인전철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시승격 직후까지 언덕과 마을 초입에 오래된 소나무가 둘러싼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안동네라는 의미에서 솔안말이란 지명을 즐겨 썼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 송내동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으로, 소나무는 한 자로 송(松), 안은 한자로 내(內), 말은 마을의 준말이므로 동(洞), 이렇게 해서 송내동이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송내동은요. 지금은 상동으로 편입되어 있지만 산골, 솔안말, 양안이, 범막골, 굳은말이라고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어요. 저희가 자랄 때는 그 중에서 솔안말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나중에 전체적으로 송내동이 된 거죠.”(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본래 송내동은 조선시대에는 부평군 석천면 구지리·산곡리 지역이었다. 1914년 부천군이 신설되면서 계남면에 속하였다가, 계남면이 소사면과 소사읍으로 변경되면서 소속명도 달라졌다. 1973년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송내·상동(上洞)으로 되었다가 1985년 송내동과 상동으로 각각 분동되었다. 1990년 송내1동·송내2동으로 다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보면 진짜 아늑한 부락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 계양산도 보이고 온통 들녘이란 말이에요. 나무도 크지 않았으니까 동네가 한눈에 다 보였어요. 마을이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했지만 나름대로 정서가 있었죠. 마치 시 한 소절처럼요.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보니까 풍경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면 마치 다른 동네처럼 느껴져요.”(신동명, 지역 토박이, 1954년생)
부천에 속한 자연부락 중에 아름답지 않은 마을은 없다. 그러나 늘 시홍보물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송내동은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을 마주한 듯 정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농촌의 경관을 이루었던 목가적 풍경은 이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도 낯설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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