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교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019
한자 新宗敎
영어공식명칭 new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
집필자 김영아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체로 1900년대 이후 나타난 종교.

[개설]

신종교는 성립 시기가 오래된 다른 종교와 달리 새롭게 형성된 종교를 말한다. 가평의 신종교는 천도교, 통일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천지교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 후기 혼란한 사회의 흐름 속에서 여러 예언서가 기복적 성격을 띤 민간신앙과 결합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설악면 일대는 예언서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명지였다. 따라서 가평 지역은 조선 후기 유림들의 은둔지와 천주교도들의 피난처로 주목받았다. 한국 종교사에서 가평 지역이 신종교의 태동과 관련을 맺게 되는 것은 동학의 창설과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이후부터이다.

[가평 지역의 천도교]

반봉건과 반외세 투쟁을 한 동학농민혁명이 삼남 지역에서 시작되자 경기 지역에서도 농민군이 참가하였으며, 가평군에 거주하는 농민들도 참여하였다. 지평[현 양평] 현감에 임명된 맹영재가 차기석의 부대와 접전을 벌인 1894년(고종 31) 10월 전투에서 가평과 홍천을 무대로 활약하던 농민군이 타격을 입었다. 그 후 동학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 군대에게 패하면서, 가평 지역에서 동학 활동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가평의 동학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었다. 1905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교명을 바꾸고 동학을 모태로 한 종교로 다시 출발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신숙, 정한교, 민영순 등 가평의 천도교 인사들은 반일 애국운동을 펼쳤다. 천도교는 1994년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약 300여 개의 교당과 1백여 만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천도교 관련 대표 인물인 신숙(申肅)[1885~1967]은 가평 출신의 천도교 인사이자 항일무장투쟁운동을 했던 인물로 향교리에서 출생하였다. 가평 읍내리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신석범(申錫範)의 아들이다. 190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1905년 국민신보 기자로 근무하였다. 1909년 정한교와 모의하여 일진회장 이용구의 암살을 계획했으나 이재명 열사의 이완용 척살 기도와 겹치면서 실패하였다. 1912년 천도교 종학강습소 강사로 선임되었으며 도사실서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17년 중앙대종사 종법원으로 전임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김영륜과 함께 보성사에서 인쇄하던 독립선언서를 교정하고 고향인 가평을 비롯하여 각 지방에 배포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3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20년 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천도교의 대표적 인물의 파견을 요청했을 때 적임자로 선출되었다. 신숙은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상해에서 천도교를 전파하고, 「천도교의 실사」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포교용 자료로 활용하였다. 조선이 해방되던 1945년 하얼빈에서 신숙은 오광선 등과 같이 재만동지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에 추대되었다. 이 해에 조직된 길림한국인회의 위원에 당선되어, 만주 지역에 흩어져 살던 동포들의 구제와 귀국 알선에 주력하였다. 1963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민영순(閔泳純)[1879-1929]은 가평 출신 천도교 인사로, 화악리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로 개신한 뒤 1914년 천도교 종무원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8년 춘원 이광수와 함께 『독립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하던 중 3·1운동이 발발하였다. 이 때 민영순은 천도교측 간사로서 독립선언서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임무를 맡았고, 스승인 이규봉을 통해 가평에서 독립운동이 촉발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였다. 1924년부터 천도교에서 발간하던 잡지 『개벽(開闢)』의 업무 담당 책임자로 일하였다. 1926년 개벽사가 필화 사건으로 잠시 폐간된 뒤, 체포 구금되어 1929년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정한교(鄭漢敎)[1880~1937]는 가평 출신 천도교 인사이자, 독립운동가로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이규봉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상경하여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가평군 내의 시설로는 천도교 중앙 총부 산하의 전국 9개 수도원 가운데 하나인 천도교 화악산 수도원이 북면 화악2리에 있으며, 원장은 전태흘이다. 수도원은 천도교 신자들의 수련 생활과 각종 교단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학 및 천도교 운동사에 관한 서적으로는 『동학사』가 있다. 1940년 오지영(吳知泳)이 간행한 서적으로, 초간은 영창서관(永昌書館)에서, 이후 1974년 박영사에서 재간행된 뒤, 1979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초간 원본 그대로 영인, 출판하였다.

[가평 지역의 세계평화가정통일연합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954년 문선명에 의해 창립된 신종교이다. 가평군 관내에는 설악면의 청심교회, 가평읍 향교로의 가평교회가 있다. 청평면에 청평 통일교회가 있다. 대표자는 서기석이며, 신도 수는 약 23명이다. 또한 설악면에 통일신령협회 청평수련원이 위치하고 있어, 종교 행사와 합동 결혼식 등이 거행된다. 이외에도 설악면 미사리로에 청심 국제 중고등학교, 선학 UP 대학원 대학교, 청심 국제 청소년 수련원, Peace TV, 선학 역사 편찬원, HJ 천주 천보 수련원, 천보원 등이 있다.

[가평 지역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19세기 미국에서 설립된 신종교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하는 종교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본부는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다. 관련 기관으로 서울 위생병원과 삼육대학교, 그리고 출판사 시조사 등이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 최초의 교인은 손홍조이며, 평안남도 순안에 처음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가평 지역에는 청평면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위치하고 있으며 대표자는 서황교이고, 신도 수는 70명이다. 가평읍 읍내리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있으며 대표자는 방한규이고, 신도 수는 50명이다. 설악면에 엄소리 안식교회가 있으며, 대표자는 윤덕수, 신도 수는 20명이다. 설악면에 설악 안식교회가 있으며, 대표자는 윤영원, 신도 수는 60명이다. 이 외에도 상면 덕현리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수양관이 자리하고 있다.

적목리 안식교 신앙 유적지는 1999년 12월 31일 가평군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가평천 상류 북면 적목리 산1-2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을 피해 모여든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하던 곳이다. 일제의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그리고 종교 탄압과 강제 징용을 피해 은신하며 신앙심을 지키던 교회 터가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이나 종교, 풍속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한국재림교회 신자 13가구 약 70여 명이 지도자 신태식, 반내현 선생의 지도하에 이곳에 들어와 신앙공동체생활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오춘수가 해방의 기쁨을 담은 「가평가」를 작사하였다.

[기타 신종교]

그 밖에 가평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신종교들은 원불교, 여호와의 증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기독교에덴성회전국교회연합 등이 있다.

원불교 가평교당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계량촌길 1-14[승안리 13-1]에 위치한다.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은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비득재길 7[현리 354]에 위치한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경춘로 871 네오오피스텔에 위치하고 있다. 기독교에덴성회전국교회연합은 1970년대 서울특별시에서 창시된 개신교계 신종교로 본부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에덴벚꽃길 189[상천리 2]에 있다.

[현황]

1995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 주택 총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볼 때 신종교군에서 차이가 있다. 경기도 전체는 대순진리회,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순서로 종교 인구 분포가 이루어지지만, 가평의 경우 천도교, 대순진리회, 원불교, 대종교 등의 순서로 종교 인구 분포가 이루어져 있다. 가평 지역이 천도교가 우세한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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