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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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同靑年團加平軍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다혜 |
[정의]
1947년 경기도 가평 지역에 설립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해방 이후 1945년 10월 20일 경 가평경찰서가 생기고 미군부터 1개 중대가 주둔하였으나 가평 읍내에는 좌익과 우익 두 개의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유재록을 회장으로 하는 농민층 대부분은 우익이고, 김의순을 대장으로 하는 청년층은 좌익이 우세하였다. 이 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가평지회가 조직되었는데 임원으로 회장 전명규, 부회장 박청문, 조직부장 손병직, 선전부장 유제록이 선임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가평지회가 조직됨으로써 가평 지역은 우익이 우세를 점하였으나 목사 김광호를 위원장으로 한 인민위원회 가평지부가 조직되자 양쪽의 세력이 비등해졌다. 1946년 3·1절 행사도 좌우가 따로 개최하면서 양쪽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익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1946년 4월 대동청년단 가평군단이 창설되었다. 대동청년단 가평군단 조직은 단장 김홍기, 부단장 박영순·윤기호, 감찰부장 유제록, 훈련부장 정삼득, 선전부장 손병직, 총무부장 이찬우, 회계감사과장 신경균으로 구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6년 10월 좌익 청년 세력이 가평경찰서 형사 신해균과 이준형을 감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좌익 세력의 민청위원회 간부 양억만과 왕운열을 연행 조사하였고, 민청위원회에서는 100여 명을 동원해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대동청년단 가평군단원 80여 명은 인민위원회 사무실을 급습하여 스탈린·김일성 사진과 집기, 간판 등을 파괴하고 사무실에 있던 좌익 청년을 공격하였다. 가평경찰서에서는 대동청년단 가평군단과 합세하여 사무실에서 압수한 문서를 근거로 2,000여 명의 좌익 청년을 연행, 구속했다. 구속한 청년들을 취조한 후 간부 100여 명을 자수하게 하여 보도연맹으로 가입시켰다. 이후 나머지 인원은 각서를 받고 석방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좌익 세력은 지하로 잠적하였다. 이후 대동청년단 가평군단은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