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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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福純 |
영어공식명칭 | Lee Boksoon |
이칭/별칭 | 경일(景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현채 |
출생 시기/일시 | 1553년 - 이복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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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이복순 위원군수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9년 - 이복순 통정대부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40년 - 이복순 사망 |
출생지 | 미원현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
부임|활동지 | 청주목 - 충청북도 청주시 |
부임|활동지 | 위원군 - 자강도 위원군 |
묘소|단소 | 이복순 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현암 선영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위원군수 |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문신.
[가계]
이복순(李福純)[1553~164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경일(景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가은군(加恩君) 이빈(李份)이며, 아버지는 병조 참판에 증직된 이희무(李羲武)이다. 부인은 횡성 고씨(橫城 高氏)이다.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 이원로(李元老)는 숭록대부 완양군(完陽君)에 봉해졌다.
[활동 사항]
이복순은 1580년(선조 13)에 진사가 되었다. 청주판관(淸州判官)을 거쳐 1604년 위원군수(渭原郡守)에 부임하였고, 이후 여러 지역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1619년(광해 11)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21년(인조 2)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미원(迷源)[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다시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를 받고 복직하여 도문장(都門將)을 지냈다. 1640년(인조 18) 8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이복순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현암 선영에 있다. 묘갈명은 노홍기(盧弘器)에게 시집 보낸 이복순의 둘째 딸이 낳은 노황(盧鎤)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