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13
한자 全州
영어공식명칭 jeon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부남면|금산군 제원면 남부|부리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완산주에서 전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776년 - 전주에서 완산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40년 - 완산주에서 전주로 개칭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지도보기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지도보기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지도보기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지도보기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도보기
관할 지역 전주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지도보기

[정의]

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소양면, 구이면, 용진읍, 봉동읍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지방통치구역.

[개설]

전주는 통일신라시대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756년(경덕왕 15)에 완산을 바꾼 이름이다. 전주는 신라 9주의 하나로, 지금 전라북도 전주시·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상관면·소양면·용진읍·삼례읍 남부·봉동읍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제9 신라본기 제9, 경덕왕 16년 12월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完山州爲全州 領州一·小京一·郡十·縣三十一”

『삼국사기』 권제36 잡지 제5, 지리3 신라 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全州 夲百濟完山 真興王十六年爲州 二十六年州癈 神文王五年復置完山州 景徳王十六年改名 今因之 領縣三 杜城縣 夲百濟豆伊縣 景徳王改名 今伊城縣 金溝縣夲百濟仇知只山縣 景徳王玟名今因之 髙山縣夲百濟縣 景徳王改州郡名及今因之. 進禮郡 本百濟進仍乙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三. 伊城縣 本百濟豆尸伊縣 景德王改名 今富利縣. 淸渠縣 本百濟勿居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丹川縣 本百濟赤川縣 景德王改名 今朱溪縣”

[내용]

전라북도 완주군은 전라북도의 북부 중앙에 위치해서 동으로는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과 충청남도 금산군(錦山郡), 남으로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서로는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와 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그리고 북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와 경계가 서로 잇닿아 있다. 또 안으로는 전라북도 전주시(全州市)를 감싸 안고 있다. 즉, 전주시가 완주군의 서남쪽 한가운데에 있어서, 전주시의 구역 전체가 완주군에 에워싸여 있는 것이다. 1935년까지는 지금의 전주시도 그 전부가 사실상 완주군의 일부였기 때문에 완주군과 전주시의 연혁은 1935년까지는 똑같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후에도 최근에 이르기까지 완주군의 영역이 전주시에 편입되어 축소되는 등 두 지역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으며, 백제가 이 땅을 영유하면서 ‘완산(完山)’이라고 불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의하면 ‘완산(完山)’으로 되어 있지만, 정확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군(郡)이거나 현(縣)이었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완산’이라는 이름도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비로소 신라식 이름으로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의 완주 지역은 아직 지방의 중요한 도시로는 발달하지 못했다. 주변의 금마저[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벽골군[전라북도 김제시], 고사부리[전라북도 정읍시] 등은 사료에서 등장하는 지역으로 백제에서도 유력한 지역이었지만, 완주 지역은 그다지 중요한 거점 지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60년(의자왕 20)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부흥군의 활동과 신라에서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신라에 병합되어 685년(신문왕 5)에 신라의 지방행정 구역인 9주 중에서 하나인 완산주가 설치되면서 이 때부터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지방 군단인 완산정(完山停)도 함께 설치되어 군사상의 중심지로도 중요시되었다. 이로써 완산 지역이 전라북도 지방의 행정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에 주군현의 명칭이 바뀔 때, 현재 이름인 ‘전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전주는 1주 1소경 10군 31현을 통치했다. 또한 전주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군사의 중심지로서 완산정(完山停)이 있었다. 군사의 배치규모로 보아 한산정(漢山停)[현재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중시되었다. 776년(혜공왕 12)에 완산주로 환원되었으며, 785년(원성왕 1)에는 총관을 도독(都督)으로 고쳤다.

한편 통일신라의 불교 5교 9산의 하나인 열반종의 근본도량인 경복사고달산[고덕산]에 세워지면서 불교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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