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722
한자 尹持憲
영어공식명칭 Yon Ji-heon
이칭/별칭 프란치스코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64년(영조 40)연표보기 - 윤지헌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789년(정조 13) - 윤지헌 천주교 입교
몰년 시기/일시 1801년(순조 1) 10월 24일[음력 9월 17일]연표보기 - 윤지헌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4년 - 윤지헌 천주교 순교자, 복자품(福者品)에 오름
출생지 윤지헌 출생지 - 전라도 진산
활동지 윤지헌 활동지 - 전라북도 완주군
성격 천주교 순교자
성별 남자
대표 경력 천주교 복자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활동한 종교인.

[개설]

윤지헌(尹持憲)[1764~1801]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순교자 윤지충의 동생으로, 1791년 신해박해 이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이거한 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2014년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활동 사항]

윤지헌은 본관이 해남(海南)이다.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증손자로 1764년(영조 40) 전라도 진산[현재 충남 금산군과 논산시 지역]에서 아버지 윤경(尹憬)과 어머니 안동권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 순교한 윤지충(尹持忠)의 동생이다. 1789년(정조 13)에 형 윤지충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러나 1791년 윤지충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고 천주교식으로 장례(葬禮)를 치렀다는 ‘진산사건(珍山事件)[辛亥迫害]’으로 순교하자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윤지헌는 가족을 데리고 진산을 떠나 전라도 고산의 운동[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으로 이주해 순교할 때까지 살았다. 이주 후에 윤지헌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1795년(정조 19)에는 고산을 방문한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았으며, ‘대박청래(大舶請來)사건’에 참여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유항검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의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대박청래사건’이 드러나면서 동료들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포도청과 형조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의금부에서 마지막 문초를 받은 뒤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했으며, 다시 전주로 이송되어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에 능지처참(陵遲處斬) 형을 받고 순교했다. 당시 윤지헌의 나이는 37세였다. 윤지헌이 순교한 뒤 고산에 갇혀 있던 아내와 가족은 모두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헌의 형 윤지충을 비롯하여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諡福)되었다.

[묘소]

윤지헌의 묘소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2021년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바우배기에서 유해가 발굴되었다.

[상훈과 추모]

윤지헌은 2014년 8월 16일 방한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거행된 시복식(諡福式)에서 형 윤지충을 비롯하여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복자품(福者品)에 올랐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9.21 현행화 [묘소] 2021년 윤지헌 유해 발굴 사실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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