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1254
영어공식명칭 Geolchigijae and Swinjil Roc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집필자 김세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 「걸치기재와 쉰질바위」『완주군지』에 「걸치기재와 쉰질 바위」로 수록
관련 지명 걸치기재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지도보기
채록지 「걸치기재와 쉰질바위」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옥황상제|선녀|선관
모티프 유형 창조|재생|부활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전하는 모악산에 배를 대던 걸치기재쉰질바위에 대한 전설.

[채록/수집 상황]

「걸치기재와 쉰질바위」는 1996년 완주군에서 간행한 『완주군지』「걸치기재와 쉰질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걸치기재는 옛날에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소릿길’이라고 불렸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서 먼 길을 가다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걸치기재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이서면은 바다였다. 당시 모악산에는 배를 대던 쉰질바위가 있었다. 어느 따스한 봄날 하늘에서 수십 명의 선녀와 선관들이 모악산에 내려와 뱃놀이하던 중 걸치기재에 부딪쳐 유람선이 전복되었고, 선녀와 선관 모두 죽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이 사고가 이서면의 바다에서 일어났고, 또한 걸치기재가 높이 솟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당장 이곳 바닷물을 모두 서해로 몰아가 없애 버리고 걸치기재 또한 깎아버렸다. 그때부터 걸치기재는 구릉이 되어 다시 솟아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모티프 분석]

우리나라 창조신화에서 옥황상제의 딸인 선문대 할망[할머니]은 키도 크고 힘도 센 거인으로, 치마폭에 담겨 있던 흙이 바다에 쏟아져 내려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대홍수 설화에서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신이 벌을 줄 때 큰 비를 내려 온 세상을 잠기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산과 바다를 만들거나 없애거나 하는 화소들은 창조신화에 자주 등장한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은 내륙지대에 있어 바다와 거리가 멀지만, 「걸치기재와 쉰질바위」 속에서 구현되는 모습은 현재와 다르다. 쉰질바위는 ‘쉰 길’ 즉 50길[120m 또는 150m] 정도 높이가 된다고 하여, 깎아지를 듯 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가리킨다. 전국에 ‘쉰질폭포’, ‘쉰질바위’가 많이 분포하지만,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은 바다였던 지역이 산간 지역이나 평야 지대로 변화되는 흥망성쇠와 더불어 지명에 얽힌 전설 속에서 지역민들의 바람과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모악산에는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금산사가 세워졌고 그 후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을 만들면서 번성했다. 환생한 미륵임을 자처하며 후백제의 왕이 된 견훤으로 인해 모악산 금산사가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견훤 역시 아들과 내분으로 궁예를 멸망시킨 왕건에게 패하고 말았다. 조선 선조 때 전주 사람 정여립을 중심으로 선비 천여 명이 희생된 기축옥사가 일어난 이후 호남은 반역의 고장이라 낙인찍혀 등용에 제한을 받았다. 이렇듯 흥망성쇠의 부침을 거듭해오면서 모악산걸치기재는 구릉이 되었고, 다시 예전의 위용을 뽐내며 솟아오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걸치기재와 쉰질바위」 전설의 결말은 위정자에 의해 배척당하고 내쳐져 버린 울분과 동시에,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고 싶다는 완주군민들의 염원이 투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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