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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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槎錄 |
영어의미역 | British Travelogue Diary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천경화 |
[정의]
1902년 경기도 부천 출신의 외교관 이종응이 한문으로 쓴 영국 기행 일기.
[개설]
『서사록(西槎錄)』이란 서양에 배를 타고 갔다 온 기록이란 뜻이다. 이종응(李鍾應)[1853~1920]은 부천시 소사본1동 웃소새에 100여 년 전 이주한 전주이씨 덕흥대원군 후손이다.
[서지적 상황]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21.5㎝, 세로 30㎝이다. 총 68쪽으로 매면은 12행이며, 1행은 21자이다.
[구성/내용]
이종응이 한국외교사절단으로서 1902년 6월 26일에 거행된 영국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여 귀국할 때까지 겪은 세계일주 항행 견문 내용이 실려 있다. 1902년 4월 5일 서울에서 국서를 받고 고종황제에게 사폐(辭陛)한 날부터 8월 20일 인천으로 귀국할 때까지 4개월 반 총 136일간 매일 일기식으로 쓴 기록이다. 지명과 인명은 한글로 기록했으며, 날짜는 양력으로 쓴 후 음력을 부기하였다.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는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러시아 등 세계 56개국 사절단이 참석했으며, 아시아에서는 한국·중국 청나라·일본 3개국만 참석하였다. 한국사절단은 4월 6일 서울을 출발하여 일본 요코하마에 내려 주일공사 유찬(劉燦)의 주선으로 대관식에 입을 예복을 맞춰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 촬영 후 캐나다 밴쿠버로 출항하였다. 밴쿠버에서 대륙횡단 철도로 퀘벡에 도착한 후 대서양을 횡단하여 6월 5일 영국 리버풀에 도착, 기차로 런던에 입성하였다. 6월 26일 대관식에 참석한 후 프랑스·이탈리아·수에즈 운하·홍해·콜롬보[스리랑카]·싱가포르·홍콩·상하이·나가사키 등을 거쳐 8월 20일 인천에 도착하였다. 이종응은 ‘26 June 1902 Edward Ⅶ’이라 새겨진 기념 메달을 받았다.
1902년은 러일전쟁 발발 2년 전이며, 을사조약 3년 전이다. 일본의 침략 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충군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영국에 사절단을 파견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8괘국기를 뱃머리에 게양하고 영국사행을 수행하여 에드워드 7세에 국서를 제정함으로써 한국의 주체성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이종응은 서양과학기술의 경이로운 발달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매번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지런히 힘써 밤낮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마치 지극한 정성을 멈추지 않는 하늘의 도(道)에 견줄 만하다. 하늘이 하는 일[天工]을 사람이 대신 하는구나.”라고 기술하며 감탄하였다. 또한 “산업혁명 이래 근대 과학문명의 상징도시 런던 거리의 번화한 모습을 보니 층루고각이 하늘 높이 솟아 있어 수십 길 석벽이 연이어져 있는 것 같고, 거리에는 사람의 어깨가 부딪히고 수레바퀴가 서로 닿으니 옛날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서울 임치(臨淄)도 런던을 능가하지 못하리라.”고 기술하였다.
6월 13일 국서 제정식이 버킹엄궁전에서 거행되었다. 이종응은 궁전의 장엄한 규모를 보고 일찍이 맹자가 제나라 왕의 거처를 보고 감탄했듯이 “크도다 거처여.”라고 찬탄하였다. 영국 국회의사당에서는 만발한 토론 문화를 목격했으며, 국립은행에서는 관민 사이에 상호신용사회가 정착된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형무소의 교도 행정에서 인간적인 애민입법의 도가 시행되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