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3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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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川萬佛禪院十地經論離垢地-難勝地二冊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마니로24번길 41-62[송내동 산84-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리송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3월 26일 - 부천 만불선원 십지경론 이구지・난승지2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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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천 만불선원 십지경론 이구지・난승지2책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부천 만불선원 - 경기도 부천시 마니로24번길 41-62[송내동 산84-2] |
성격 | 불교 경전 |
권책 | 2책 |
행자 | 20행 13자 |
어미 | 상하 하향 이엽 화문|무어미 |
판심제 | 十地論卷四|十地論卷七 |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만불선원에 있는 조선 시대 『십주경(十住經)』을 해석하여 만든 논서.
[개설]
『십지경론(十地經論)』은 대승 불교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가운데 제22품에 해당하는 『십지품(十地品)』을 별도로 편집하여 번역한 『십주경(十住經)』을 해석한 것이다. 십지는 제1 「환희지(歡喜地)」를 비롯하여 제2 「이구지(離垢地)」, 제3 「명지(明地)」, 제4 「염지(焰地)」, 제5 「난승지(難勝地)」, 제6 「현전지(現前地)」, 제7 「원행지(遠行地)」, 제8 「부동지(不動地)」, 제9 「선혜지(善慧地)」, 제10 「법운지(法雲地)」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계를 중심으로 보살이 닦아야 할 갖가지 수행 방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부천 만불선원 십지경론 이구지·난승지(十地經論離垢地·難勝地)2책은 이 중 「이구지」와 「난승지」에 해당하는 2책이다. 권수의 서명 아래 함차와 권말의 재조본 간기 등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에 재조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별도의 형식으로 간행·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3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6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권수의 서명 아래 재조대장경의 함차인 ‘공(空)’이 새겨져 있고, 권말의 “임인세 고려국 대장도감 봉칙 조조(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의 간기가 그대로 새겨져 있어 재조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판각한 조선 시대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의 독립된 경전이 언제부터 유통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557년(명종 12) 황해도 성숙사(星宿寺)와 1635년(인조 13) 전라도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간행된 예가 확인된다. 그러나 판식과 서체 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 조선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독립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선장본 형태로 판본 형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무계(無界)이다. 반곽의 행자 수는 8행 14자이다. 권수제 아래로 권차와 편차가 있으며, 그 아래로 함차가 새겨져 있다. 판심제는 ‘十地論卷四(십지론권사)’와 ‘十地論卷七(십지론권칠)’이며 그 아래 장차가 새겨져 있는데 ‘상하 하향 이엽 화문’, ‘무어미’ 등 어미의 형태가 일정치 않다.
[구성/내용]
제2 「이구지」는 더러운 번뇌를 떨치고 깨끗하게 되는 제2 단계를 발기정(發起淨)과 자체정(自體淨)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며, 무엇보다도 보살은 계율을 지키고 10선행(善行)의 실천이 중요함을 설하고 있다. 제5 「난승지」는 어려운 고비를 이겨 내는 경지로, 5단계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첫째는 보살의 교만을 없애는 것이고, 둘째는 끊임없이 불도를 닦는 것이며, 마지막인 셋째는 불도를 닦아서 얻는 결과를 설하고 있다. 십지의 각 단계는 보살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방편적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며, 누구나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고자 하면 불법을 믿고 따라 흔들림 없이 수행에 전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천 만불선원 십지경론 이구지·난승지2책 은 재조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판각한 조선 시대 유통 판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이러한 형식의 독립된 경전이 언제부터 유통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황해도 성숙사본과 전라도 순천 송광사본과도 판식과 서체 등이 다르게 나타나 조선 시대 다양하게 유통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