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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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生活 |
영어공식명칭 | Dietary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정숙,이성욱 |
[정의]
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부천시의 지형은 한강 하류 굴포천에 잇닿은 넓은 평야로 이루어진 북부와 서부, 해발 100~200m 내외의 낮은 구릉지로 이루어진 동부와 남부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부천 지역에서는 예부터 주로 논농사와 밭작물, 과수재배 등을 했으며, 인천과 접해 있어 생선이나 젓갈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특히 성주산 등 고지대 주변 지역은 사질토양으로 과수 재배에 적당해 복숭아를 많이 재배했고, 밭에서는 청채미[청참외]를 재배하였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소박했으며 특색 있는 전통 음식은 전하지 않는다. 쌀이 부족한 춘궁기 때는 구황음식을 많이 먹었다. 1960년대 이후 논밭의 면적이 빠르게 감소하면서 부천의 농토는 대장동 지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부천의 오정 뜰에서 생산한 쌀은 부천의 농협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식생활을 들여다보면 오곡밥·보리밥·콩나물밥·무밥 등은 건강식 웰빙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김치나 장류도 집에서 담가 먹기보다 통신 구매나 판매 상품을 사서 먹는 가정이 많아졌다. 특산물 복숭아는 시의 상징으로, 복사골축제로 이어 가고 있다. 예부터 현재에 이르는 부천 지역의 식생활은 일상 음식, 구황음식, 의례 음식, 특산물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일상 음식]
1. 주식
농사를 생업으로 하던 부천 사람들은 주식으로 봄·여름에는 보리·밀 농사를 지어 밀개떡과 보리밥을 주로 먹었는데, 쌀이 귀해 감자와 함께 섞어 먹었다. 여름에 보리밥을 먹을 때 감자를 삶아 솥에서 으깨 보리밥과 섞으면 부드럽고 맛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감자는 주식으로 많이 먹었다. 밀개떡은 밀을 반죽해 지금의 호떡보다 약간 더 크게 만들어, 외콩[강낭콩]을 넣고 솔가지를 꺾어 깐 다음 그 위에 쪄서 먹었다. 가을이 되면 밭곡식으로 조·수수·콩·팥 등의 잡곡을 주로 먹었다. 가을이면 수수가 제일 먼저 나와 수수를 털어 밥을 해 먹고, 가을 수확 이전에는 올벼가 나와 찧어서 쌀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그 외 무밥·고구마밥·감자밥·콩나물밥 등을 먹었고, 계절에 따라 나는 재료를 이용해 메밀국수·콩국수·칼국수 등을 해 먹었다. 밀장국[칼국수]이라 해서 애호박을 넣고 장국을 끓여 먹었는데, 조금 넉넉한 가정에서는 마른 새우도 넣어 먹었다.
2. 부식
부천은 각 마을 뒷산에서 나물과 버섯이 많이 났다. 고강동의 강장골산, 능골산, 샘말산, 굴운산[샛말산] 등에 항아리버섯이 많았고, 봄이면 아까시나무 밑뿌리에서 버섯이 흔하게 자랐다. 버섯들은 된장찌개나 국에 넣어 먹었고, 나물은 취나물·도라지·잔대나물이 많아 데쳐 먹었다. 하천에서는 장어·메기·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 먹었다. 참게는 논두렁에 살다가 벼가 익을 때쯤 논에서 나와 강으로 돌아가려고 논꼬로 내려오는데, 여기에 발을 치고 불을 밝혀 발 위로 올라오는 참게를 잡았다. 잡은 참게는 얼큰하게 고추장찌개로 끓여 먹거나 게장을 담가 먹기도 하였다. 개울에서 민물새우는 채로 건져 잡아 무를 넣고 조려 먹었다.
3. 김치와 장류
1) 김장김치
젓갈로는 새우젓과 조기젓을 주로 쓰고, 까나리나 밴댕이젓을 쓴다. 지역적으로 인천과 접해 있어 젓갈을 많이 이용했고, 속을 넣는 김치보다 막김치를 많이 하였다. 배추와 무청을 썰어 서로 잘 버무려 섞어 담았다. 이렇게 김치를 서너 독 담가 겨울 동안 김치죽이나 김치밥을 해 먹었다. 이외에 작동에서는 청채미김치·총각김치·깍두기·동치미 등을 많이 담가 먹었다.
2) 장류
메주는 늦가을인 음력 10월에 잘 띄워 준비하고, 음력 2월에서 3월 초에 간장을 담는다. 메주를 깨끗이 씻어 독에 담고 소금물을 붓는데 소금의 비율이 잘 맞아야 한다. 비율은 소금 1말, 콩 1말, 들통 물 2통 정도를 쓴다. 숯, 마른 고추, 대추 등을 넣고 간장을 담근 후 40~60일쯤에 메주를 건져 된장을 담그고, 간장은 달여서 항아리에 보관하여 먹는다. 고추장은 고춧가루·메줏가루를 빻아서 찹쌀이나 보리 익힌 것을 엿기름물에 삭힌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춰 담고 익으면 먹는다.
[구황음식]
일제강점기 부천 지역의 농가 1만 1800가구 중에 지주 및 자작농은 14.2%에 불과해 조선 소작인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사회의 혼란 속에 춘궁기의 부천은 쌀이 부족해 굶거나 끼니를 거르거나 꾸어서 먹거나 구황음식을 해 먹었다.
호박 풀떼기는 호박을 썰어 푹 끓이고 밀가루를 풀어 멀겋게 끓여 먹는 음식이다. 수수로 수수 풀떼기를, 그 외에 밀장국·시래기죽·콩죽·보리죽·개떡을 해서 먹었다. 지금은 건강과 별미 음식으로 먹고 있다.
[의례 음식]
의례에는 규범화된 의식이 있고, 의식에는 음식이 따랐다. 의례 음식 역시 특별한 양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용과 형식이 변화되었는데, 부천시 역시 과거에 행해지던 의례 음식이 과거에 비해 간소화되고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1. 출생 음식
아이가 태어나면 밥·미역국·물을 준비해 삼신상을 차려 산모 머리맡에 두었다가 산모가 먹었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풍속이 되었다.
2. 백일과 돌 음식
백일에는 백설기와 수수팥떡[수수경단]을 해서 쌀밥·미역국과 함께 상을 차린다. 수수팥떡은 살을 풀어 준다고 해서 열 살까지 해 주었다. 돌에는 새로 밥그릇·국그릇·수저를 마련해 주고, 쌀밥과 미역국으로 상을 차렸다. 돌옷을 지어 입히고, 돌상에는 무명 타래실을 올려 주었다. 예전에는 어린아이들이 으레 치르는 홍역·마마가 무서운 질병의 하나였기에 이웃에서도 명이 길도록 실을 선물하였다.
3. 혼례 음식
혼례를 치르는 집에 손님이 오면 막걸리·약주[맑은 술]·안주·국수·떡[인절미·절편]을 마련해 대접하였다. 지금은 대부분 음식점[뷔페]을 이용해 대접한다.
4. 회갑 음식
만 60세가 되는 생일을 회갑이라 해서 큰 잔치를 하는데, 이때 마련하는 음식을 말한다. 회갑상은 밤·대추·곶감·다식·산자·떡·산적 등을 높이 고여 큰 상차림을 하고, 하객들과 잔치를 벌였다. 요즘은 음식점에서 회갑연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조촐하게 지내거나 아예 지내지 않고 70세에 고희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5. 상례 음식
과거 장례는 5일장이나 7일장을 지냈지만 지금은 대부분 3일장을 치른다. 조문객에게 맑은 고깃국, 반찬, 녹두 부침, 막걸리, 약주를 대접하였다.
6. 제례 음식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안마다 나름대로 격식이 있지만 기본적인 과일인 곶감·밤·대추·사과·배를, 조과는 옥춘[사탕]·약과·다식·산자를 올린다. 적은 어적[북어를 불려서 썼다]·육적·계적[닭]의 삼적을 올렸고, 전은 녹두전을 올렸다. 그 밖에 북어포·삼색나물·식혜 등을 올렸다. 이외 각 절기나 명절 음식으로 설에는 떡국을 끓이고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해서 먹었는데, 부천 지역은 특색 있는 전통 음식이나 별미 음식으로 전해 오는 것이 없다.
[특산물]
부천시는 경인선의 개통으로 소사역이 설치되고, 1908년에는 일본인에 의해 복숭아 과수원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일설에 따르면 1903년 인천역장을 지냈던 일본인 다께하라가 퇴직한 후 당시 간이역이던 소사역 앞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 처음에는 관상수로 심었으나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1925년부터 새 품종을 개발할 정도로 인기가 좋아졌고, 복숭아나무는 점차 부천 일대 곳곳에 심어졌다. 이후 복숭아는 부천을 상징하는 과일, 나무가 되어 부천을 ‘복사골’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부천에서 나는 복숭아 품종으로는 수밀도와 백도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1930년경에는 복숭아 재배 면적이 50만 정보에 이를 정도가 되었고, 생산량도 연 30만 관이나 되어 한때 평양, 신의주, 만주까지 출하될 정도였다고 한다.
부천의 복숭아 과수 재배의 성공 요인은 성주산과 같은 고지대 주변 지역이 사질 토양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결과 부천의 복숭아는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부천의 복숭아는 ‘소사명산’이란 이름을 붙여 서울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인천 등의 시장으로 출하되기도 하였다. 복숭아 생산은 1970년을 최고 절정으로 하였고, 소사 복숭아는 나주 배, 대구 사과, 의성 감과 함께 전국 4대 명물이 되었으며, 한때 복숭아 통조림의 주 원료가 되기도 하였다. 소사 복숭아 통조림은 1968년 83만 통, 이듬해 1,399만 통, 1970년에는 1,391만 통으로 최고 생산량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73년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부천은 점차 신흥 공업도시로 변모하였고 이에 따라 복숭아 과수원은 사라지고 소사 복숭아의 명성도 점차 소멸되어 갔다.
그 결과 부천에서 복숭아의 생산량은 점차 줄어들어 2022년 기준으로 부천에서 복숭아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다만 부천시에서 관리하는 복숭아 밭 두 곳[송내·역곡]에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복사골’이라는 지명은 여전히 부천을 상징하고 있고, 복사골예술제도 유지되고 있다. 복숭아 외에도 국화와 장미 등 화훼류가 부천의 수출 품종으로 자리매김하여 주요 특산물이 되고 있다.
부천은 연녹색을 띠는 청채미[청참외]로도 유명하였다. 초여름 청채미를 심어 한여름에 내다 파는데, 고강동·성곡동·오쇠동에 밭이 많아 재배한 참외를 지게나 손수레, 마차에 싣고 목동에서 영등포 오목교를 지나 양평동, 더 멀리 서울 남대문까지 내다 팔았다. 덜 익은 청채미는 속이 써서, 쓴 속을 발라내고 겉만 소금에 절여서 장아찌로 만들거나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먹기도 하였다.
[향토 음식]
부천의 향토 음식은 점차 잊히고 있지만 부천문화원에서 발행하는 『부천문화』94호[2021]에 따르면 올망대[올방개]가 추억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올망대는 과거 부천의 지역 원로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식재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올망대는 보통 봄철 논밭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로 손톱만큼 작고 하얀 색을 띤 식재료라고 한다. 특히 과거에 부천 지역 논밭에서 자주 보이던 것으로 그냥 먹어도 달달한 맛이 났다고 하며 수생식물로 자라던 것을 쟁기질을 하면 그 열매가 보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곤 하였다고 한다. 올망대는 보통 묵을 만들 때 사용되는 식재료인데 이를 올망대묵[올방개묵]이라고 한다. 요즘은 중국산 올망대로 묵을 쑨다고 하는데 중국산 올망대는 상당히 크고 양도 많아서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부천에서 보였던 올망대의 크기는 상당히 작아서 묵으로 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은 중국산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하니, 향후 양식이 가능하다면 추억의 음식이자 부천의 향토 음식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천시는 2016년 부천의 대표 맛집으로 특색 음식점 23곳을 선정하였다. 이 중 전통 음식 분야, 향토 음식 분야로 나눠 특색 음식점을 구분하였는데 선정된 음식점은 지정증과 인증 표지판을 주고 부천시청의 홍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년에 한 번씩 위생 검사와 맛, 서비스 심사 등을 거쳐 재지정되는 방식을 취하였고 2022년 기준으로 부천의 특색 음식점은 ‘부천맛집’, ‘대표음식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천시청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부천맛집’, ‘대표음식점’은 총 14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