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046
영어음역 Yongdam-dong Gujung Gogae
영어의미역 Gujung Pass of Yongdam-dong
이칭/별칭 이정골 고개,「구증(舊僧)고개 설화( 說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운식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 경계에 있는 고개에 얽힌 전설.

[내용]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한양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이참판이 청주 고을로 내려와 살았다. 이참판의 외동딸 운선(雲仙)은 자기 집 하인인 상백(相百)이 비범함을 알고, 연정을 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을 태우다가 상사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참판은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한 뒤에 약을 쓰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였으나 전혀 효험이 없었다. 이참판은 경기도 용인에 명의(名醫)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딸의 병세를 자세히 적은 서신을 상백에게 주면서 의원을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운선은 동구 밖 성황당에서 상백을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서 자기의 병은 상백으로 인한 상사병임을 밝히고, 함께 멀리 도망하여 살자고 하였다. 운선의 말을 들은 상백은 크게 놀라며 자기와 같이 미천한 놈과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양반의 손에 죽도록 하는 것이므로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혼자 도망하여 용바윗골[龍岩] 낙가산(洛迦山) 기슭에 있는 보살사(菩薩寺)로 들어가 주지인 보현(普賢) 스님께 중이 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사정을 들은 보현(普賢) 스님은 그를 객방에 두고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보현(普賢) 스님은 그의 뜻이 변함없음을 보고, 좋은 날을 택하여 머리를 깎고, 정각(正覺)이란 법명을 내린 뒤에 수도에 전념하게 하였다.

어느 날, 상백은 주지 스님을 따라 시주를 받으러 청주 성안으로 들어갔다가 운선에게 발각되었다. 그날 밤 보살사로 상백을 찾아가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절을 빠져 나가자고 졸랐다. 그는 처음에는 불제자의 몸으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그녀의 눈물 어린 호소에 마음이 변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밤중에 남몰래 보살사를 빠져나와 청주성으로 향하던 중 자주 다니던 이정골 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게 되었다. 그는 이 고개를 넘으면서 ‘다시는 속세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불과 석 달 전의 일인데, 오늘 다시 환속하여 그 고개를 넘게 된 일을 생각하니,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의지가 약함을 탓하면서 그녀에게 “앞으로 떳떳하게 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함께 죽자고 하였다. 그녀도 신분이 다른 그와 떳떳하게 살 수 없음을 잘 아는지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새벽, 마을 사람들은 중들이 넘는 고개에서 목을 매어 죽은 젊은 중과 처녀의 시체를 발견하고 관아에 알렸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신분이 밝혀졌다. 이에 보살사 주지인 보현(普賢) 스님은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고, 그 고개로 중들이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전에 중들이 다니던 고개라 하여 구중고개[舊僧峙]라 한다. 주지 스님의 명에 따라 그 고개로 다닐 수 없게 된 스님들은 새 길을 찾아 다녔는데, 그 고개를 중고개[僧峙]라고 한다. 지금의 금천고등학교 뒤쪽으로 해서 낙가산에 오르는 길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18 본문 내용 수정 얼마 후, 보현(普賢) 스님 스님은 그의 뜻이 변함없음을 보고 ->얼마 후, 보현(普賢) 스님은 그의 뜻이 변함없음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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