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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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岩藥水說話- |
영어음역 | Myeongam Yaksu Seolhwa |
영어의미역 | A Tale of Myeongam Mineral Water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운식 |
[정의]
청주시 명암동에 있는 명암약수와 관련된 전설.
[내용]
명암약수터는 명암동의 속칭 범밭골[虎田谷]에 있다. 이곳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밤낮으로 호랑이와 늑대가 출몰하였으며,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범바윗골[虎岩谷] 또는 범밭골[虎田谷]이라고 불렀다.
그전에 청주 고을 남들(현 수곡동)에 사는 박생원이 딸을 대머리(청주시 방서리)에 사는 한서방에게 시집보냈다. 얼마 동안 행복하게 살던 딸이 우연히 병이 났는데,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죽음에 이르게 된 박생원의 딸은 남편에게 친정으로 가서 지내다가 죽게 해 달라고 하였다.
박생원은 사위 한서방과 상의한 끝에 딸을 집으로 데려왔다. 딸을 데려다 놓은 박생원 내외는 딸을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딸의 병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천수사(天壽寺) 스님이란 분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스님은 집안에 환자가 있는 것을 보고 환자를 살핀 뒤에 말했다.
“환자의 병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시면서 백일 동안 정양(靜養)해야 합니다. 환자가 정양할 곳으로는 범밭골이 좋겠습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박생원의 부인은 딸을 호랑이가 들끓는 범밭골에 데려다 놓는 것은 호랑이 먹이로 주는 것이라면서 극력 반대하였다. 그러나 박생원은 딸은 이미 죽은 목숨이니 최후의 방법을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위 한서방과 상의한 뒤에 숲 속 적당한 곳에 움막을 짓고, 딸을 데려다 놓았다. 박생원은 거기에 100일 동안 먹을 양식을 남겨 두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한 달 후에 한서방이 흉몽을 꾸었다면서 달려왔다. 딸을 보내고 마음이 불안하던 박생원은 딸의 시체라도 찾아서 묻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서방과 함께 움막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딸이 뜻밖에도 살아있는데, 화색이 돌고 몰라보게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크게 놀라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그녀가 말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으러 다니다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 맛을 보니 톡 쏘는 맛이 나고, 그 물을 마시기도 하고, 밥을 지어 먹기도 하였는데, 차츰 몸이 좋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지더군요.” 라고 말하면서 물을 한 바가지 떠다 주었다. 박생원과 한서방은 물을 마셔본 뒤에
“이것은 하늘에서 주신 영천(靈泉) 약수(藥水)임이 분명하다.”고 감탄하면서 기뻐하였다. 박생원의 딸은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한서방과 함께 잘 살았다.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몸에 병이 있는 사람들이 다투어 이곳을 찾아 약수를 마셨다. 이 약수가 지금도 나오고 있다.
[형식]
이 설화는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박생원의 딸이 처음으로 발견한 샘물을 먹고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것으로, 약수 치료 모티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설화는 여러 곳에서 전해 오는 약수 또는 온천 발견 설화의 형식과 비슷하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철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명암약수는 청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물을 마시거나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청주시에서는 작은 집을 지어 약수를 보호하고, 또 정기적으로 수질 검사를 하여 그 결과를 게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산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