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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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橿 |
영어음역 | Min Ga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걸순 |
[정의]
국내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1909년경 동지들과 비밀결사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남대문 밖에 소의학교(昭義學校)를 세워 민족교육사업에 나섰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이른바 한성정부(漢城政府)의 성립과 국민대회(國民大會) 개최를 추진하였고, 자금 조달을 추진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직후 그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동화약방을 대동단과 연통본부(聯通本部)의 연락거점으로 제공하는 한편, 대동단이 이른바 천장절(天長節)인 10월 31일을 기해 거행하려 한 만세시위 계획 때에는 서울의 7개 학생 청년 단체들의 동원책임을 맡고 이를 추진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1년 6월형을 확정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상해로 건너가 1924년 1월 교민단의사회(僑民團義事會)의 학무위원(學務委員) 등을 역임하며 활동했는데 1924년 3월 일경에 다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묘소]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