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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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範 |
영어음역 | Jang Beo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재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本貫)은 인동(仁同)이며, 자(字)는 의중(儀仲)이고, 거주지는 청주 가산리(駕山里)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장우신(張禹臣)이며, 동생으로는 장윤(張輪), 장량(張車量), 장복(張輻), 장원(張轅)이 있었다. 청주 가산리(駕山里)에 세거하기 시작한 문충공(文忠公) 장덕생(張德生)의 5세손이다.
[활동사항]
1546년(명종 1)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1549년 문과(文科)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의 18위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경상도 도사, 형조정랑, 예조정랑, 헌납, 함안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함안군수로 재임시 금천서원(琴川書院)을 창건하여 흥학에 힘을 썼으며, 서헌(書軒)을 중창하고 서중방(西中房)을 중수하는 등 많은 치적을 쌓아 『함주지(咸州誌)』 「명환조(名宦條)」에 사실이 실려있다. 경상도 도사로 재임시인 1568년(선조 1)에 인동(仁同)을 다녀간 후 『인동장씨청주파보(仁同張氏淸州派譜)』의 서문(序文)을 지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쌍암동(雙岩洞)에 있었으나 이전하여 현재는 남일면 화당리에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지역에 세거하는 인동장씨 문충공파(文忠公派)의 선조(先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