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834
한자 娘臂城
영어음역 Nangbiseong
이칭/별칭 낭자곡(娘子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민식

[정의]

충청북도 청주의 옛 지명.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29년(신라 진평왕 51, 고구려 영류왕 12) 가을 8월에 신라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여 크게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위치비정]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지리4)에는 백제에 속했던 웅천주(熊川州)의 서원(西原)은 달리 ‘비성(臂城)’과 ‘자곡(子谷)’이라 하였으며, 『고려사(高麗史)』(56 지 제10 지리1)에는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당현과 함께 비로소 ‘낭비성(娘臂城)’과 ‘낭자곡(娘子谷)’이 보인다.

또한 군명(郡名)에 상당, 낭비성, 서원경(西原京), 청주(淸州), 낭성(琅城), 전절군(全節軍)이 보이고 있다. 낭비성과 함께 청주의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낭자곡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초기 기록에 보이고 있는데, 63년(신라 탈해이사금 7, 백제 다루왕 36) 백제왕이 낭자곡성에 이르러 신라에 만나기를 청한 기록이 있다.

이때의 낭자곡성을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충주(忠州)로 비정하여, ‘청주-낭성·낭비성·낭자곡성’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낭비성·낭자곡성을 구체적으로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琅城面)의 어느 한 산성으로 보거나, ‘충주-낭자곡성·낭성’설에 따라 충주의 남산성(南山城)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청원군 북이면(北二面)의 삼국시대 석축 산성인 낭비성을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낭비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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