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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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牧牛寺址 |
영어음역 | Mokusaji Archeological Site |
이칭/별칭 | 목암(牧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산 3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상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절터.
[명칭유래]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목암(牧菴)’ 또는 ‘목우암(牧牛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건립경위]
창건시기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막새기와, 해무리굽 청자,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으며, 연화문 와당과 ‘천력이년(天曆二年)’명 와편이 수습된 바 있는데 천력이년은 1329년(충숙왕 6)으로 이때에도 목우사가 매우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상당구 문화동 상당공원에서 우암산(牛岩山)[338m] 등산로를 따라 올라 주택지역이 끝나는 곳의 왼쪽에 목암사가 보이고 그 맞은편의 대지가 목우사가 있었던 절터이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폐사되어 현재는 개인 소유의 주택과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절터 앞에 축조된 축대는 아직도 일부 남아 있어 웅장하였던 목우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에는 석축을 비롯하여 각종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목암사 법당에 봉안된 석불입상은 이곳에서 옮겨진 것으로서 미술사적으로나 청주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목우사지는 앞으로 우암산(牛岩山)[338m] 종합개발과 함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사적지로 정비할 가치가 충분한 유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