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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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化洞塔神祭 |
영어음역 | Seongwha-dong Tapsinje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for the Seonghwa-dong Pagoda Tutelary God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영진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의 원농촌(原農村) 동민들이 마을을 수호하는 탑신(塔神)에게 올리는 제사.
[개설]
원농촌(原農村)의 마을로 들어가는 산모퉁이 암석 앞에 잡석을 원추모양으로 쌓은 돌탑을 마을을 수호하는 탑신으로 삼아 동민들이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행위를 말한다.
[변천]
옛날에는 돌탑이 마을의 신이고 돌탑이 있는 탑거리는 신성한 지역으로 항상 청결하게 다듬고 오갈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다녔다. 그리고 정월 초에는 집집마다 떡시루를 갖다놓고 개인적인 소원을 비는 탑고사를 지냈으며, 또 매년 정월 14일에는 동민들이 집단적으로 일 년 동안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탑신제를 지냈다.
탑신제는 ‘삼일정성’이라 하여 삼일 전에 돌탑의 주변을 청소하고 왼새끼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 부정을 막고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즉 그 해의 생기와 맞는 나이를 가진 남자를 제관으로 뽑으면 제관과 동민이 모두 근신하는데, 특히 제주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하여 특히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의 날 아침에 동민들이 정성껏 내놓은 쌀과 돈으로 마련한 제물을 탑신 앞에 차려놓고 동민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 축관, 유사가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제주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대동소지(大同燒紙)와 동민들이 개별적으로 소원을 비는 호별소지(戶別燒紙)를 올리고 음복한 다음 마을농악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터를 눌러주던 지신밟기를 하였다.
그런데 70여 년 전 마을에 살던 정용신이라는 사람이 신성한 탑거리의 암석을 깨고 탑돌을 가져다가 제방을 쌓고는 집안이 망하여 떠난 뒤 마을에 재앙이 그치질 않아 동민들이 다시 탑을 쌓고 지금까지 탑신제를 지내고 있다.
[현황]
오늘날 흥덕구 성화동의 탑신제는 마을의 건강한 노인이 제주가 되어 동민과 함께 돼지머리, 시루떡, 쌀, 포, 삼색과일 등을 제물로 차려놓고 유교식으로 제를 지내고 음복한 뒤 뒤풀이로 농악을 치며 하루를 즐기지만, 옛날처럼 제에 앞서 부정을 막던 금줄과 황토가 없으며 제 뒤에 터를 눌러주던 지신밟기도 하지 않는다.
제주도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이 아닌 건강한 노인이 맡고, 엄격했던 금기마저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년 지내던 탑신제를 십 년 전부터는 3년에 한 번씩으로 간소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잡한 형태의 석탑이나 깨끗하지 못한 탑거리에서 옛날의 신성과 정성은 발견할 수 없다. 성화동이 시골에서 도시로 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화동 탑신제는 비록 그 내용이 약화되고 그 형태가 간소화되고 있어도, 주민들은 탑신제를 통하여 마을의 공동체의식과 일체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