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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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毅燮 |
영어음역 | Song Uis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양수 |
[정의]
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부탄리에서 1865년 송수일(宋秀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비범한 재주를 보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스스로도 성현의 덕행으로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친상에는 3년을 하루같이 추모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높은 제자였다.
문학과 덕행이 진보하여 이미 20대 초반에 동문은 물론 유림에서 존경받은 학자로 많은 제자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 들었다. 저술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 고종(高宗)을 시해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일본 경찰의 추궁을 받았으나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여 물리쳤다.
[저술]
『시문잡저(詩文雜著)』 10여권과 『동국강감(東國綱鑑)』 20여권이 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월탄리에 있었다가 1983년 흥덕구 수의동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