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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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鍾岱 |
영어음역 | Yi Jongd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양수 |
[정의]
청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활동사항]
국운이 기울어가던 한말.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수여리 5번지에서 태어나 만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길림성(吉林省)에서 세운 제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신창학교와 길흥고등소학교 등을 설립, 육영사업에 투신하였다.
길림성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 상무 간사에 1929년 2월 임명되고, 이듬해엔 영길현(永吉縣) 한교동향회장으로서, 군사단체인 정의부의 군사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만주사변후 일본 영사관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12월에 풀려났다. 1933년 1월 이후 중국어학연구사와 영신모범농장을 경영하여 교민들의 생활 안정을 도왔다.
영신농업학교를 1937년 5월부터 운영하고, 1942년 3월에는 길림흥농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신광중학교 교장, 길림시와 영길현 교민회장 등을 역임하고, 1948년 월남하여 청주에 정착하였다.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청주시장을 역임하고, 1960년에는 민선시장이 되었다. 임기 후에는 청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인품이 강직하고 생활은 검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