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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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世胤 |
영어음역 | Jeong Seyun |
이칭/별칭 | 정행민(鄭行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수연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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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미상 |
몰년 | 1728년 |
본관 | 하동(河東) |
아우 | 정계윤(鄭季胤) |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세조(世祖)대 영의정까지 오른 명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정행민(鄭行旼)이라고도 한다. 동생 정계윤(鄭季胤) 또한 무신란에 가담하여 참형되었다.
[활동사항]
양성현에 거주하던 양반으로 무신란의 청주성 장악에 가담한 인물이다. 정세윤은 청주성 장악을 위하여 박필현(朴弼顯), 안엽(安燁)과 함께 사람을 모았으며, 3월 15일 청주성 장악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청주성 장악 후 이인좌(李麟佐)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부하들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하는데, 이때 정세윤은 부원수가 되었다. 이어 정세윤은 이인좌 등 반군과 함께 청주에서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을 거쳐 안성과 죽산으로 북상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안성에서 패하고, 죽산에서 관군이 몰려오자 정세윤은 이만빈(李萬彬), 이우석(李禹錫)에게 쫓기어 포박 당하였다. 군중에서는 그의 반역행위가 심하다 하여 먼저 지체(肢體)를 가른 후에 참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