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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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客館重修記- |
영어음역 | Cheongju Gaekgwan Jungsugi |
영어의미역 | Record of the Restoration of the Cheongju Guesthou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주 |
저·편자 | 이정구(李廷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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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 | 1편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청원군청 근처에 있던 청주목 소속의 객관(客官)을 중수한 내력을 이정구(李廷龜)가 기술한 중수기.
[개설]
청주읍에 부임한 한백겸(韓百謙)이 객관을 중수하였는데, 그 시말을 이정구가 기술해놓는 글이다.
[서지적 상황]
목판(木版)으로 간행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奎章閣本)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영인했다. 이정구의 『월사집(月沙集)』 37권, 5~7장에 실려 있다. 제목은 ‘「청주객관중수기(淸州客館重修記)」’이다.
[구성과 형태]
제목을 포함해서 총 32줄이다. 1줄에 21자 씩 새겨서 찍었다. 반곽(半郭)은 20.6㎝×15㎝이다.
[제작경위]
한백겸이 청주에서의 임기가 끝나고 돌아가기에 앞서 이정구에게 기문을 써달고 요청하여 써주었다.
[내용]
청주는 토지가 비옥하고 호걸이 많다고 고려조 때부터 일컬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참혹하게 입어, 관청건물이 많이 소실되고 백성이 많이 죽어, 성읍이 쇠퇴하였다. 이런 어려움을 잘 수습한 적임자로 한백겸이 선발돼서 부임했다. 부임 후 재건을 위해 공적(公的)인 것을 받들고 의로움으로 보살핀지 일 년이 안 되어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안정되고, 근심하던 사람들이 웃으며 노래하고, 곡식이 창고에 쌓이고 하니 사람들이 화합했다.
한백겸이 이사(吏士)들에게 말하기를, 큰 고을에 찾아오는 우마차와 여행객들이 많으니 걸맞는 시설을 구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관공서의 재정을 내고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그 전의 규모에 따라 중당(中堂)을 크게 세우고 동서로 날개를 달았으며, 온돌방과 마루를 만들고, 주방과 마구간을 지었다. 성(城)과 해자(垓字)를 개축하고 문루(門樓)를 증설했으며, 무기와 군수품을 정비했다. 이리하여 그 공적을 칭송했다.
[의의와 평가]
읍을 다스리는 지방관이 백성들에게 경비를 조달하지 않고 국가 예산을 활용하여, 여행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폐허가 된 객관을 복원하고 필요한 건물들을 증축하여 칭송을 받았다하니, 진정 청렴하고 도덕적인 행정 관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