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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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族 |
영어음역 | gajok |
영어의미역 | family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집필자 | 김영희 |
[정의]
부부를 중심으로 그 근친인 혈연자가 주거와 경제적 협력을 같이하는 생활공동체.
[개설]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사회 안에서도 세대별로 다르고, 같은 가족 안에서도 성과 연령에 따라 다양하며, 사회·계층적 지위에 따라 가족들이 누리는 삶의 경험이나 기회도 달라질 뿐 아니라 가족이 믿는 종교나 거주지역에 따라서도 가족 경험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족과 가족관계의 실상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선진 서구의 수백 년에 걸친 산업화과정을 수십 년의 단기간에 이룩하여 변화의 속도 뿐 아니라 변화의 내용도 매우 다양하여 가족의 개념을 정의하고 시대에 따른 가족의 변화과정을 조명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부부와 그 속에서 다시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부모-자녀로 된 생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변화하는 사회규범과 사회구조적 특성에 발맞추어 적응해 왔기 때문에 가족의 개념정의는 시대·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가족이란 개념보다는 가구, 친족, 집, 가정과 같은 용어로 가족을 총칭하고 있어 가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핵가족이 출현되기 시작한 1970년대이고 주로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집성촌과 가족]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로 승격한 청주시는 예로부터 친족들이 모여서 산 집성촌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집성촌은 친족단위로 이루어진 마을로 청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대표가 되는 대머리의 청주한씨(淸州韓氏)를 비롯하여 수름재의 한산이씨, 모가울의 밀양박씨(密陽朴氏), 비상의 초계변씨(草溪卞氏), 너더리의 남양홍씨, 민마루의 여흥민씨, 머뫼의 교하노씨(交河盧氏), 산동의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이에 속하는데, 이를 사람들은 '청주의 8대성'이라 칭하였다. 이러한 집성촌은 혈연집단으로써 주로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진 친족단위의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다. 또한 사람들은 집성촌에서 거주와 생계를 같이 하면서 가구를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족을 가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집성촌에서는 집과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룬 군락으로 집이란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과 가족구성원의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즉, 공간으로서의 집은 가족구성원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리적인 것들로 구성되고,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집은 조상을 포함한 가족구성원 전원을 하나의 집단적 존재 내에 포함시키는 개념이다. 집보다 가족을 더 광범위하게 나타내는 개념은 가정으로, 가정은 공간적 장소라는 의미와 함께 가족원들의 신념이나 애정, 그리고 정서적 만족의 의미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현황]
청주시의 가족실상을 인구통계학적으로 살펴보면 2005년 4월 기준으로 1일 평균 9쌍이 혼인을 하고 있고, 출산은 1일당 18.9명이며, 이혼은 1일당 5.9쌍이고, 사망은 1일당 6.6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4년 6월말에 집계된 통계를 살펴보면 한 가구 당 평균 가족수는 2.9명이고, 모자가구는 838가구(2,270명)이며, 부자가구는 158가구(494명)이고, 소년소녀가장은 153가구(233명)이며, 독거노인은 5,008명이며, 국민기초수급자가구는 7,384가구(14,331명)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통계치는 청주시 가족의 크기나 가족형태의 변화를 입증해주는 수치이다.
1998년 전국 단위로 조사된 가정생활만족도를 살펴보면 청주시를 포함한 충북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만족이 29.8%, 만족이 34.1%, 보통이 28.6%, 불만족이 7.6%이었다. 자기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만족이 24.8%, 만족이 32.5%, 보통이 35.7%, 불만족이 7.0%이었다. 경제적인 생활형편은 매우만족이 4.2%, 만족이 15.0%, 보통이 46.7%, 불만족이 34.0%로 경제적인 면의 불만족이 다른 영역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녀와의 관계는 매우만족이 35.4%, 만족이 33.4%, 보통이 25.5%, 불만족이 5.7%이었다. 전반적인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16.5%가 매우 만족한다고 하였고, 27.0%가 만족하였으며, 44.2%가 보통이었고, 불만족이 12.3%로 나타났다.
결혼은 반드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33.6%이었고, 하는 것이 좋다가 39.9%이었으며,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3.8%이며, 가급적 안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1.1%이었으며, 0.2%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며, 1.4%가 모르겠다고 하였다. 재혼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가 3.0%, 하는 것이 좋다가 22.7%,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가 45.9%, 가급적 안하는 것이 좋다가 15.4%, 하지 말아야 한다가 5.6%, 모르겠다가 7.4%로 나타났다. 이혼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라도 해서는 안된다가 23.7%, 이유가 있더라도 가급적 해서는 안된다가 42.0%, 경우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가 25.5%, 이유가 있으면 하는 것이 좋다가 6.1%,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가 1.1%, 모르겠다가 1.7%로 나타났다. 이혼사유는 성격차이, 경제문제, 가족간 불화, 배우자 부정, 정신적·육체적 학대, 건강문제 순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가정생활의 만족도를 추구하는 영역이 다양하고, 결혼·이혼·재혼에 대한 태도에 대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거주형태와 부부관계]
한 사례를 통해 청주시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러한 가족의 변화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흥덕구 사창동에 거주하는 한상진(가명, 1916년생)은 청원군에 살고 있었던 이화영(가명, 1925년생)과 1944년에 결혼하였다. 이화영의 본관은 전주이다. 이화영의 친정은 그 일대에서 이름난 부자였는데, 부친이 생전에 동학운동에 뜻이 있어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화영이 결혼을 할 즈음에는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한상진은 방앗간을 운영하며 농사를 지어, 4남 4녀와 이화영이 친정서 데리고 온 어린 처제를 부양했다. 현재 한상진은 연로하여 특별한 직업이 없이 집안에서 화초 가꾸기 등 소일을 하고, 동네 경로당에 가서 담소하며 하루를 보낸다.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8남매 중 막내아들만 독신으로 살고 있고, 다들 출가를 시킨 뒤 현재는 셋째 아들과 같이 산다. 지금의 집은 예전의 한옥을 허물고 2002년에 대지 150평, 건평 60여 평 규모로 지은 2층 양옥집이다. 집은 방 4칸, 거실, 주방, 화장실 겸 세면실, 다용도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들이 주로 모이는 곳은 거실이다. 거실에는 TV, 비디오, 소파가 놓여 있고 저녁이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TV를 본다.
한상진의 큰아들인 한대철(가명)는 집안끼리의 중매로 음성에 살고 있던 10살 차이나는 김소이(가명)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고 흥덕구 봉명동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8년전 사고로 죽었다. 둘째 아들인 한대길(가명)는 중매를 통해 만난 5살 차이의 이순이(가명)와 2년 정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였다. 한둘째(가명)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들 둘이 있다. 셋째 아들인 한대식(가명)은 세 살 차이나는 수원에 살고 있던 곽수진(가명)과 연애를 통해 결혼하여 현재 흥덕구 사창동에서 부모를 모시며, 인테리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는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대에 가 있다. 넷째 아들은 독신으로 대전에서 건설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큰 딸인 한다영(가명)은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던 2살 차이나는 장건익(가명)과 결혼하여 현재 경기도 부천시에서 가정주부로 있고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둘째 딸인 한여진(가명)은 옥천에 살고 있던 3살 차이나는 배현수(가명)와 연애 끝에 결혼을 하여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1남 1녀를 두고 있다. 셋째 딸인 한일숙(가명)은 영주에 살고 있던 차태식(가명)과 학교에서 만나 연애 끝에 결혼하여 청주에서 살고 있다. 한일숙(가명)은 공무원으로 관공서에 다닌다. 막내딸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던 차에 조민식(가명)과 만나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하였다. 막내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부모님들이 이들 부부를 가까이에 사는 것을 원하여 결혼할 당시에는 직장을 청주로 옮겨 현재는 청원군에 거주하고 있다. 막내딸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자녀들은 명절과 부모님의 생신, 제사 그리고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있는 가족모임 때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특히 인근에 사는 셋째 딸과 막내딸이 자주 내왕한다.
[의의와 평가]
위의 사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가족의 개념에는 아직도 법률혼으로 맺어진 부부관계나 자녀관계가 필수적인 조건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한상진의 자녀수는 8명인데 비해 그의 자녀들은 1-2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어 자녀수가 현저히 감소하였고, 한상진이 셋째 아들과 같이 살고 있어 부모는 당연히 장남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가족가치관에 변화를 보여주었다. 또한 주거형태 역시 생활의 편리성에 더 중점을 두어 현대식으로 개조하였고,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실이 부각된 것은 현대 가족의 애정적 기능이 중요시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녀들이 출가하면서 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청주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사는 것은 친족끼리 모여 사는 마을이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청주시의 가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본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