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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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上黨城 |
영어음역 | Gosangdang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성동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上黨山城)에 있었던 석축 산성.
[개설]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새로이 고쳐 쌓은 현재의 상당산성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던 석축 산성이다.
[명칭유래]
상당(上黨)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석축 산성보다 앞서 쌓여진 산성을 이르는 말이다.
[건립경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685년 서원소경(西原小京)을 설치한 후 689년 서원경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김유신(金庾信) 열전에 신라 문무왕 때 김유신의 아들 김원정(金元貞)이 서원술성(西原述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서원경성과 서원술성이 같은 성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고상당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는 상당산성에 궁예(弓裔)의 도읍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여 상당산성, 또는 그보다 앞서 쌓은 산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위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淸州牧) 산천(山川)조의 기록을 통해 고상당성의 위치를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동쪽 15리에 상령산이 있다고 하였다. 「고적(古蹟)조」에서는 석축으로 터가 남아있고 안쪽에 큰 우물이 있어 가뭄에 빌면 효험이 있다는 상령산성(上嶺山城)과 함께 율봉역(栗峰驛) 뒷산에 석축으로 둘레 7,773척이며 안쪽에 12곳의 우물이 있으나 지금은 무너졌다는 고상당성이 함께 보이고 있다.
이때의 상령산성과 고상당성은 같은 곳을 이르는 것으로 기록상의 오류로 보인다. 조선 전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분명히 석축 산성과 성내의 연못, 혹은 우물의 흔적이 보이고 있어, 현재의 상당산성을 제외하면 그 터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다시 고쳐 쌓기 이전의 상당산성을 이르는 말로 볼 수 있다.
[변천]
현재의 상당산성은 조선 숙종 때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02년 서문, 서북벽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개축 이전의 서문과 성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때 수습된 유물을 통해 상당산성이 처음 쌓여진 연대를 통일신라 때로 올려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상당산성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복원 사업을 통해 성벽의 대부분과 성내에서는 3곳의 문루, 동장대 등 건물의 일부를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