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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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炳敦 |
영어음역 | Yi Byeongdon |
이칭/별칭 | 이철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양미 |
[정의]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한 독립운동가.
[가계]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면 279번지에서 1914년 6월 25일 과수원을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력]
1927년 신흥군 신흥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0년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부터 3년간 중국 산시성(陝西省) 태원시(太原市)에 있는 산시성립 원예시험장에서 연수를 받았다.
[활동사항]
신흥공민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선대부터 이어온 과수농사를 지었다. 선진 영농기술을 배우려 1939년 10월 중국 산시성 태원시로 건너갔다. 여기서 태원신문 산서성 신민보사 사업부에서 근무하면서 산시성에서 건립한 원예시험장의 연수생으로 영농기술을 연마하였다. 체류 중인 태원시가 일제의 침공으로 점령지가 되자 횡천(橫川)를 건너 산시성 시안시(西安市)로 이주하였다.
1942년 1월 광복군 제2지대 낙양지구 초모공작특파원인 서곤, 이욱승 등과 접선을 통해 광복군과 인연을 맺은 뒤, 그 다음 달 중국 산시성 시안시 이부가(二府街)에 있는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 신국빈, 왕태일 등과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 초대 체육부장과 신생 훈련단장을 역임하였으며, 1943년 3월 중국전시간부훈련단에 파견돼 교육을 받다 1945년 4월 미국전략첩보국(OSS) 훈련반에 입교하였다.
OSS 특수무기반을 수료하고 국내정진군 사령관인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출동명령을 기다리던 중 일제의 항복으로 8·15 광복을 맞았고, 1946년 6월 귀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상당구 오동동에서 과수농업에 종사하다 2005년 91세로 사망하였다.
[묘소]
대전광역시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 있다.